보령 풍천임씨 600년史

보령 (保寧)풍천임씨(豊川任氏)를 이끄는 청.장년회 연말총회

♧문화재 지킴이 2009. 12. 10. 13:28

 

보령 (保寧)풍천임씨(豊川任氏)를 이끄는 청.장년회 연말총회

혈육의 정으로 조상의 위대한 역사전통 계승과 뿌리의식 고취와 화합하는 친목모임


     일시 : 2009년 12월 8일 (화)18시30분

장소 : 보령시 대천동 한일 불고기

내용 : 12월 연말 결산 및 임원 개선


   시조 임온(任溫)은 중국 사람으로 고려 때 우리나라에 건너와 황해도 풍천에 살았다. 시조의 6세손 임주(任澍) 에 이르기까지 풍천에

살면서 후손들이 풍천을 본관으로 삼았다.

풍천임씨는 고려 충열왕 때 안찰사를 지낸 임주의 아들 임자송, 임자순 대에서 백파와 중파로 나뉘면서 고루 인물을 배출, 번성하게 된다.

 특히 충남 보령시 주산면 금암리는 풍천임씨의 모밭이라 할수있을 정도의 집성촌이다. 이곳 보령 일대에는 풍천임씨 1천3백여 가구가 집단을

이루어 살고 있다. 특히 금암리에는 2백여 가구 중 1백여 가구가 풍천임씨다.

 풍천임씨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6백여 년 전. 고려 공민왕 말년 임자순(任子順 민부전서)의 큰 아들 정승공(政丞公) 임향 (任珦 8세) 이 신돈에게 쫓겨 홍성으로 유배됐다. 그 뒤 남포 죽도로 이배 되어 귀양을 살던중  귀양살이가 풀려 돌아가던 시기에 이성계의 조선 개국으로 인한 신조정의 부름을 받았으나 고려에 대한 불사이군(不事二君) 정신으로 절의(節義)를 지키며 남포(藍浦)오상동(五相洞)으로 숨어들어 시서(詩書)를 즐기며 일생을 마치 었다.  그 이후부터 풍천임씨는 이곳에서 터주 대감 노릇을 하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부터 대성으로 기록되며 대대로 600년을 살고 있다.

이런 전통과 역사를 계승하기 위해  3 년전 부터 종파를 초월하여 젊은 청.장년들이 뜻을 같이 하는 모임을 결성 하자는 취지로 시작하여 임동칠 (보령축협조합장)을 중심으로 30여명이 시작하여 80여명으로 회원이 확대되고 기금도 2천5백 여만원을 마련하고  임도순(임도순법무사사무소 소장 )총무의 애.경사 노력과  임세혁 (자영업) 부회장의 친선과 화합을 하는등 3년여 동안 엄청난 일을 해왔다.

아울러 임원 개선에서는 대천로타리클럽 회장을 역임한 임규식(서림인쇄사 대표)을  회장으로 추대 하고  부회장 에는 총무로 고생한 임도순 법무사를 총무에는 임관혁 (보령신협 )을 선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