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풍천임씨 600년史

보령(保寧)풍천임씨(豊川任氏) 청.장년회 11월 월례회

♧문화재 지킴이 2009. 11. 10. 20:53

 

보령(保寧)풍천임씨(豊川任氏) 청.장년회 11월 월례회

조상의 숨결 느끼며 뿌리의식 고취 및 끈끈한 혈육의 정 느끼는 친목 모임


일시 : 2009년 11월 10일 (화)18시30분

장소 : 보령시 대천동 한일 불고기

내용 : 11월 정기 월례회


   시조 임온(任溫)은 중국 사람으로 고려 때 우리나라에 건너와 황해도 풍천에 살았다. 시조의 6세손 임주(任澍) 에 이르기까지 풍천에 살면서

 후손들이 풍천을 본관으로 삼았다.

풍천임씨는 고려 충열왕 때 안찰사를 지낸 임주의 아들 임자송, 임자순 대에서 백파와 중파로 나뉘면서 고루 인물을 배출, 번성하게 된다.

 특히 충남 보령시 주산면 금암리는 풍천임씨의 모밭이라 할수있을 정도의 집성촌이다. 이곳 보령 일대에는 풍천임씨 1천3백여 가구가 집단을

이루어 살고 있다. 특히 금암리에는 2백여 가구 중 1백여 가구가 풍천임씨다.

풍천임씨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6백여 년 전. 고려 공민왕 말년 임자순(任子順 민부전서)의 큰 아들 정승공(政丞公) 임향 (任珦 8세) 이

신돈에게 쫓겨 홍성으로 유배됐다. 그 뒤 남포 죽도로 이배 되어 귀양을 살던중  귀양살이가 풀려 돌아가던 시기에 이성계의 조선 개국으로 인한

신조정의 부름을 받았으나 고려에 대한 불사이군(不事二君) 정신으로 절의(節義)를 지키며 남포(藍浦)오상동(五相洞)으로 숨어들어 시서(詩書)를

즐기며 일생을 마치었다.  그 이후부터 풍천임씨는 이곳에서 터주 대감 노릇을 하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부터 대성으로 기록되며

대대로 자자손손 600년을 살고 있다.


 조선조에 문과 급제자 1백49명을 배출한 풍천임씨는 성종, 연산군 대에 임사홍 부자가 잠시 전횡한 것을 빼고는 주로 선조 이후 조선 후반기에

 세력을 떨친다.

사명당으로 유명한 임응규(12세)는 풍천임씨 의 최고의 인물이며 임향(任珦) 의 현손(玄孫)이다. 서산대사의 으뜸제자인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연히 승복을 벗고 의병장으로 나서 수많은 적을 무찌른다. 일본에 건너가 왜장 덕천가강(德川家康)과 담판, 인질로 잡혀간 3천5백여 명의 동포를

구출하기도 했다.

윤지당 임씨는 여류학자로 유명하다. 그는 임적 의 딸로 신광유의 부인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성리학에 통달했다. 정조 20년 동생 임정주와

시동생 신광우가 유고를 정리하여 "윤지당유고" 2권을 간행했다. 과거 급제자는 모두 481명이다. 2000년 현재 99,986명이 있다.


현재 보령도서관 앞과 개화예술공원에 유정사명대사기적비, 사명당시비, 임윤지당 시비 가있다 ...

 ★ 지난 선조유적 답사 사진  (정승공 임향 묘소 참배)

 ★2009년 11월 월례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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