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풍천임씨 600년史

보령 (保寧)풍천임씨(豊川任氏)를 이끄는 청.장년회 신년총회

♧문화재 지킴이 2010. 1. 13. 10:03

 

보령 (保寧)풍천임씨(豊川任氏)를 이끄는 청.장년회 신년총회

600여년 의 집성촌으로 위대한 역사전통 계승과 뿌리의식 함양 고취와 화합을 목적으로 하는

종친간의 친목 모임단체


                일시 : 2010년 1월 12일 (화 )18시30분

                장소 : 보령시  대천해수욕장 오대양횟집

                내용 : 2010년 신년 임원 상견례 및 총회


 시조 임온(任溫)은 중국 사람으로 고려 때 우리나라에 건너와 황해도 풍천에 살았다. 시조의 6세손 임주(任澍) 에 이르기까지 풍천에 살면서

 후손들이 풍천을 본관으로 삼았다.


풍천임씨는 고려 충열왕 때 안찰사를 지낸 임주(任澍)의 아들 임자송(任子松), 임자순 (任子順)대에서 백파와 중파로 나뉘면서 고루 인물을 배출,

 번성하게 된다.


 특히 충남 보령시 주산면 금암리는 풍천임씨의 모밭이라 할수있을 정도의 집성촌이다. 이곳 보령 일대에는 풍천임씨 1천3백여 가구가 집단을

이루어 살고 있었으며. 특히 금암리에는 2백여 가구 중 1백여 가구가 풍천임씨다.


 풍천임씨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6백여 년 전. 고려 공민왕 말년 임자순(任子順 민부전서)의 장자(長子) 정승공(政丞公) 임향 (任珦 8세) 이

신돈에게 쫓겨 홍성으로 유배됐다. 그 뒤 남포 죽도로 이배 되어 귀양을 살던중  귀양살이가 풀려 돌아가던 시기에 이성계의 조선 개국으로 인한 신조정의

부름을 받았으나 고려에 대한 불사이군(不事二君) 정신으로 절의(節義)를 지키며 남포(藍浦)오상동(五相洞)으로 숨어들어 시서(詩書)를 즐기며 일생을 마치 었다. 

그 이후부터 풍천임씨는 이곳에서 터주 대감 노릇을 하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부터 대성으로 기록되며 대대로 600년을 살고 있다.


이런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4년전 부터 종파를 초월하여 젊은 청.장년들이 뜻을 같이 하는 모임을 결성 하자는 취지로 시작하여

초대회장 임동칠 (보령축협조합장)을 중심으로 30여명이 시작하여 현재 80여명으로 회원이 확대되고 기금도 2천5백 여만원을 마련하고 종친 애.경사

참석에 노력과 친목과 조상숭배에 이바지 하고 있다.


아울러 신임 임원에는  대천로타리클럽 회장을 역임한 임규식(서림인쇄사 대표)을  회장으로 추대 하고  부회장 에는 총무로

고생한 임도순 법무사를 총무에는 임관혁 (보령신협 총무부장 )이 취임 하였다..


이날 신년 모임에는  임세빈 보령시의회 의원 .임화빈 주산면장 .임성혁 보령시 배구협회장. 임영재 웅천읍 바르게살기 회장 .

임인식 사명당 기념사업회 보령지부 사무국장 등 40여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