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연구의 중요성과 활용
김해규(평택 한광중학교 교사)
1.교사와 향토사연구
향토사(鄕土史)란 특정지역의 역사, 지리, 경제, 인물, 문화재, 민속, 풍물 등을 연구하는 것으로 ‘지역사’, 또는 ‘지방사’라고도 한다. 지금까지 향토사연구는 전문연구자들에 의해 중앙중심, 전체사 중심의 역사연구에서 탈피하여 지역적 시각과 방법으로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노력과, 지역에서 오래 살았던 사람들이 지역문화에 대한 애정을 갖고 기억과 구전에 의존하여 문화재나 인물을 밝히고 알리려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특히 1995년 지방자치가 실시된 후 지역의 역사적, 문화적 정체성 확립과 역사, 문화적 정체성에 기초한 문화콘텐츠 개발이 필요한 지방자치단체에 의해 더욱 관심을 받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향토사연구는 과거 10여 년 전보다 양적으로 큰 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양적 성장에 비해 질적 성장은 대단히 부진하다. 이같이 부진한 원인은 능력 있는 향토사연구자 양성의 미흡과 전문 역사가에 의해 사료의 수집과 정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오늘 강의에서는 ‘교사에게 향토사 연구는 왜 필요한가?’라는 문제와, 본인의 향토사연구 활동을 소개하면서 ‘향토사의 효용성’을 함께 나누려고 한다.
1)교사가 향토사를 연구해야 할 이유
저는 좋은 교사란 깊이 있고 풍부한 전문지식을 갖춘 교사, 교사로서의 훌륭한 인품과 도덕성을 겸비한 교사, 아이들의 삶과 장래에 관심을 갖고 희망을 싹을 틔워주기 위해 헌신하는 교사라고 생각합니다. 위의 세 가지 요소는 모두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깊이 있고 풍부한 전문지식을 갖춘 교사일 것입니다. 하지만 교사가 전공과목의 모든 분야에 전문 지식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 분야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저는 그 중에서 향토사라는 분야를 선택하였습니다.
역사교사가 향토사를 연구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합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향토사연구는 역사교사의 몫이라는 데 있습니다. 대학이나 연구소에 근무하는 역사가들은 중앙중심, 전체사 중심으로 역사를 연구하기 때문에 향토사에 큰 관심을 갖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대학교와 사학과가 없는 지역사회에서 중, 고등학교 교사만큼 역사학에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역사교사도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사회에 대한 나눔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향토사연구는 교사에게 어떤 도움을 줄까요. 먼저 역사학에 대한 전문지식을 증진시켜줍니다. 우리는 향토사라고 하면 특정 지역만 연구하기 때문에 역사연구의 폭이 좁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작은 지역사회도 큰 지역사회와 마찬가지로 역사, 문화, 인물, 민속, 문화유산 등 다양한 분야가 존재합니다. 이 같은 것을 연구하다보면 역사를 넓게 보는 안목과 깊게 보는 능력(내공)이 생겨나게 됩니다. 둘째로 교사의 생명을 길게 합니다. 교직생활을 4, 5년 하다보면 교과서의 내용에 익숙해집니다. 심지어 내용을 달달 외우고 수능시험의 출제경향까지 훤히 파악하게 되지요. 그렇게 되면 제법 능력 있는 교사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10년 쯤 지나면 그와 같은 지식 장사꾼의 역할에 한계와 실증을 느낍니다. 그럴 때 자신만의 전문 분야를 갖고 있는 교사는 이와 같은 매너리즘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끊임없는 연구의욕 때문에 시간이 부족하게 느낄 것입니다. 셋째로 향토사연구는 한 사람의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교사는 아이들을 잘 가르치기도 하지만 지역사회와 교감을 나누고 지역사회발전에 일정한 공헌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향토사는 역사교사가 지역사회와 나눌 수 있는 통로이며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①먼저 연구 목적을 생각하자
향토사를 연구하려면 먼저 연구 목적를 정해야합니다. 무턱대고 ‘지역문화를 알아보자’와 같은 것이 아니라, ‘내가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여 교과활동이나 동아리 활동에 활용하겠다’ 라든가, 객관적이고 올바른 역사관으로 지역의 역사를 해석하고 정리하여 역사적 정체성 확립에 기여한다던가,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개발하여 지역문화를 활성화하겠다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②연구 분야를 정하자
‘향토사는 잡학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실 연구 인력이 부족한 지역사회에서 향토사연구는 역사와 문화 전 분야를 대상으로 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어서는 전문성과 객관성을 잃기 쉽습니다. 물론 일정한 수준까지는 전 분야를 폭 넓게 공부하고 연구해야겠지만 역량이 축적된 뒤에는 전문분야를 선택하여 깊이 있게 연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전문분야의 선택은 대학에서 전공했던 분야나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된 분야, 아니면 향토사 연구에 꼭 필요한 분야를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③좋은 안내서를 구해 읽자
향토사연구를 처음 시작한 사람들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수가 많습니다. 그럴 때 친절하고 필요한 요소를 고루 갖춘 안내서는 천군만마와도 같습니다. 우리나라에는 “향토사연구전국협의회”라는 단체가 있고, 이곳에서 연구자들을 위한 다양한 안내서들을 많이 출판하였습니다. 대표적인 것은『향토사의 길잡이』한국향토사연구전국협의회 / 수서원 / 2001년 7월, 『향토사와 지역문화』, 『향토사와 민속문화』,『향토사연구 소 편람』 등이 좋은 길잡이가 되었고, 그 밖에도 많은 연구서들이 출간되었습니다.
④향토지(鄕土誌)를 정독하라
연구 목적과 분야를 정했다면 지역에서 발간된 향토지를 구하여 정독하는 것이 좋습니다. 향토지 정독은 지역의 연구성과를 습득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개괄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시지(市誌)나 군지(郡誌) 그리고 ‘000 역사와 문화유적’과 같은 이름으로 출간된 지표조사서 등을 읽는 것이 좋습니다. 이와 함께 지도를 구해서 지역의 행정구역과 지명, 도로망을 읽혀야합니다. 지도는 국립지리원에서 나온 1:25,000이나 1:5000이 좋으며, 1:50,000 지도는 시중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⑤기존의 연구자들의 연구성과 및 지역문화단체와의 연대가 중요하다
지역에 대학교 사학과가 없는 곳은 향토사를 연구하는 전문연구자들이 매우 적거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에는 조금 나아졌지만 아직도 제 구실을 못하는 지역 문화원도 많고요. 또한 향토사가라는 사람들도 대부분 지역에서 오래 살았거나, 지역에 대하여 조금 많이 아는 것을 객관적인 근거도 없이 뽐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향토사를 연구하려면 이 같은 조직이나 인물과 연대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그들이 비전문가이고 허황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기피하거나 배타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그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나 행정적 지원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⑥사료(史料)가 왕이다
기존의 향토사연구가 인정받지 못한 것은 중앙중심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편견도 작용했지만 무엇보다도 향토사가들의 비 전문성과 객관성 결여가 큰 몫을 차지했습니다. 이와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론적 기반을 다지고 폭넓은 사료를 수집하여 객관성을 확보해야합니다.
향토사 연구 사료에는 19세기에 많이 편찬된 읍지류(예, 와 각종 지리지, 고지도, 실록사료, 각종 문헌사료 그리고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계(契) 장부, 일기류, 분재기, 족보 등 무수히 많습니다. 이 가운데 우선 구해야 하는 것은 고지도와 읍지류(예, 평택읍지, 진위군지) , 지리지(예,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택리지)입니다. 요즘에는 경인문화사나 민족문화추진회 등에서 읍지류도 번역을 해서 번역본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가급적이면 원사료를 정독하고 번역본과 비교하는 것이 좋습니다. 읍지류와 지리지 외에도 실록관련 기사, 사찬읍지, 사족가문의 전적(典籍)이나 족보, 각 종 고지도, 일제강점기 총독부 및 관변자료, 신문자료 등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합니다.
⑦지역이기주의에 매몰되지 말자
향토사 연구는 자칫 지역이기주의에 매몰되어 객관성을 잃기 쉽습니다. 특히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향토사 관련 책들에서 이런 경우를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심지어 지역의 역사, 문화적 정체성을 세우고 문화콘텐츠를 개발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역사나 인물, 문화유산들이 상품으로 포장되어 시민들에게 공개되고 교육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심각한 역사왜곡입니다.
이와 같은 한계를 극복하는 길은 수준 높은 이론과 엄격한 사료비판을 바탕으로 객관성을 갖고 접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았을 때 엉뚱한 인물이 위대한 역사적 인물로 둔갑하기도 하고, 멀쩡한 사람이 역적이 되기도 합니다. (예, 원균, 홍익한)
2.나의 향토사 연구 활동
1)나는 왜 향토사를 연구하게 되었는가!
제가 향토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교시절입니다. 반독재 민주화, 민중, 민주, 반미, 통일 같은 구호가 난무하던 시절 역사의 주체인 민중의 삶에 접근하는 역사를 해보자는 고민이 향토사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막연한 구호였으며 환상이었고, 저를 향토사연구로 인도해줄 사람을 발견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경기도 평택에 있는 한광고등학교로 부임하면서 막연한 꿈에서 깨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숫보기였던 시절 저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의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그러다가 1991년 한광여고로 학교를 옮기고 ‘고적답사반’이라는 동아리를 만들면서 향토사 연구에 한 발짝 더 다가섰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향토사연구는 동아리를 지도하며 학생들과 지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는 수준에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이와 같은 한계를 극복해야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1997년 공주대학교 교육대학원 입학이었습니다. 이 대학에는 이해준 교수나 지수걸 교수와 같은 향토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있었는데, 이 분들로부터 많은 깨달음과 경험을 전수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의 향토사연구는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향토사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나는 왜 향토사를 연구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생각 끝에 얻은 결론은 ‘살아 있는 역사교육을 위해서’와 ‘지역사회와 나누기 위해서’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2)나의 향토사 연구 범위
향토사라고 하면 지역의 역사와, 문화, 민속, 지리, 경제 등 전 분야를 말합니다. 그래서 향토사가들은 잡학에 빠지기 쉽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향토사 전반에 대한 연구부터 시작했습니다. 먼저 평택지방의 역사를 살펴보고, 지리, 경제, 문화, 인물, 유적유물, 민속 등 모든 분야를 섭렵하면서 답사와 사료를 통한 고증에 치중했습니다. 이렇게 몇 년을 하고 났더니 평택지역 전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백화점식의 나열 가지고는 깊이 있는 연구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8, 9년 전부터 연구의 순서와 범위를 정하게 되었습니다. 연구범위는 내가 관심 있는 분야, 잘할 수 있는 내용, 향토사의 발전에 꼭 필요한 것을 중심으로 정하였습니다. 저는 대학 때부터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았고 교육대학원에서도 이 분야를 가지고 논문을 썼기 때문에 평택지방의 근, 현대사를 연구범위로 정하였습니다.
근현대사를 연구범위로 정하면서 지방적 시각, 민중의 입장에서 이 분야의 연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특히 평택지방은 역사적, 사회 경제적으로 민중들의 삶의 터전이었고 민중문화가 발달한 고장입니다. 이와 같은 민중들의 삶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료를 수집하고 민중들의 역사적 경험, 삶의 경험들을 듣고 기록해야 하였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관변자료나 신문자료 등의 사료수집과 마을조사였습니다. 현재 80%가 진행된 마을조사는 우리나라 근현대의 역사를 평택지방의 시각과 경험으로 재구성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으며, 향토사연구 활동에 큰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3)향토사 동아리활동
제가 향토사를 연구하게 된 목적에는 역사교사로서 살아 있는 교육을 해보자는 다짐과, 지역사회와의 나눔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목적의식을 갖고 처음 시작한 일이 향토사 동아리 활동이었습니다. 처음 동아리를 만들었던 1991년은 유홍준의 ‘나의문화유산 답사기’의 영향으로 전국적인 문화유산답사 열풍이 불던 때였습니다.
답사반은 특별활동 시간의 이론교육과 평택과 주변지역에 대한 주말답사 및 일일답사, 방학을 이용하여 실시한 2, 3일 이내의 전국투어로 운영되었습니다. 운영자금은 학생들의 회비와 학교 동아리활동 지원비, 선생님들의 후원금으로 충당하였습니다. 1995년부터는 답사기를 모아 문집도 발간하였고, 지역사회의 문화유산 지키기 운동에도 참여하였으며, 학생들과 초보적이지만 마을조사도 실시하였습니다. 답사동아리 활동은 10년이 지난 2001년에 해체하였습니다.
4)교과교육에서의 활용
향토사연구의 가장 큰 목적은 학생들에게 생동감 있고 살아 있는 역사교육 하겠다는 것과 지역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고 축적된 성과를 함께 나누자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학기 초 교육목표를 정할 때 ‘향토사를 통하여 우리고장에 대한 역사적 발전과정을 이해하고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정체성을 세운다’라는 문구를 넣습니다. 즉 역사교육은 보편적인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와 자기 고장의 특수한 역사와 문화가 조화를 이루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교과내용을 설명할 때도 향토사를 예로 들어 설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하면 학생들은 딱딱한 교과내용을 배울 때보다 훨씬 흥미를 보이고 교과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다음의 예를 보겠습니다.
예1) 평택지방의 도로와 역원(驛院), 봉수(烽燧)를 중심으로 본 조선시대 교통(交通), 통신(通信)제도
예2) 평택지방의 수로교통을 통해서 본 조선시대 조운(漕運)제도
예3) 평택시 소사동 대동법시행선혜비를 통해서 본 대동법(大同法)
5)향토사 연구활동
향토사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조사, 연구활동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부딪치는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라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서 향토사연구에서도 전문분야가 필요하다고 저는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전문분야로 가기 위해서는 지역의 역사와 지리, 경제, 문화, 민속 등에 대한 선행학습이 필요합니다. 저는 처음 향토사연구를 시작할 때 평택군지(1984)와 송탄시사(1994)를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습니다. 1999년에는 경기도박물관에서 발행한 ‘평택의 역사와 문화유적’이라는 지표조사보고서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서울의 중앙지도사 등에서 1: 25,000 지도와 1: 5000 지도 그리고 평택시 행정지도를 구입하여 지역의 행정구역과 지명을 익혔습니다. 지명을 알고 나니 지명유래가 궁금하였습니다. 그래서 구입한 것이 한글학회에서 출판한 ‘한국지명총람’입니다. 그 외에도 ‘카메라’와 ‘동양사 연표(탐구당)’는 필수적인 준비물입니다. 제가 사용하는 카메라는 수동식 일반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 두 가지입니다. 일반카메라로는 주로 슬라이드를 찍고 보통은 디지털을 사용합니다.
지역에서 간행된 향토지들을 1, 2년 읽다보니 많은 문제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특히 원사료에도 없는 불명확한 내용을 부풀려 서술하거나 있는 사실을 왜곡되게 서술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더구나 이와 같은 내용들이 검증절차를 거치지 않고 시민들에게 보급되고 청소년과 어린이들에게 교육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역의 문화유산만이라도 좀 더 객관적으로 써보자는 생각에서 ‘평택의 역사와 문화기행’이라는 제목으로 지역신문에 연재를 시작하였습니다. 약 1년 반을 연재하면서 사료부족과 내공의 부족을 절감했지만 개인적으로는 평택지역 문화유산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연재가 끝난 후 1개월 쯤 지났을 때 신문사에서 인물에 대한 연재를 제의하였습니다. 하지만 인물사는 가장 접근이 용이하기도 하지만 제대로 쓰려면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그래서 인물사 보다는 마을조사를 통하여 마을과 지명에 대한 글을 쓰자고 제안했습니다. 제가 마을조사를 제안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습니다. 하나는, 평택지역 근,현대사를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중앙 중심의 근현대사는 폭넓은 사료를 바탕으로 다양하게 연구되어질 수 있지만 사료가 턱 없이 부족한 지방에서는 연구에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지역적 시각, 지역적 특징을 중심으로 근, 현대 역사를 연구한다고 할 때는 지역유지층과 민중들의 경험 속으로 들어가서 인터뷰하고, 수집하여 사료를 축적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평택지방의 사회, 경제적 조건이 지배문화 보다는 민중문화가 발달한 지역이라는 점입니다. 민중문화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민중들 속으로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저는 같은 마을이라도 지리적, 사회, 경제적 특성에 따라 다른 내용으로 접근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 사족들이 살았던 동족마을이라면 집안의 내력, 지역사회의 영향력(지방정치), 경제기반과 변천, 특정 인물 조사, 근현대 신분해체 과정 등에 포인트를 두었고, 오성평야처럼 해방 전후 간척사업으로 형성된 마을들에서는 간척 과정, 입향 동기, 간척 초기의 농경활동, 교육문제, 기존의 마을들과의 관계, 지주 소작관계, 농지개혁, 한국전쟁 당시의 좌우익 대립 등에 중심을 두었습니다.
이와 같은 조사와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평택의 지명이야기’라는 글을 연재하였습니다. 지명이야기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호응 속에 4년 반 동안 연재되었고, 현재 평택지역 80% 이상을 답사하여 글로 남겼습니다.
6)향토지 편찬 활동
향토지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시민들에게 공급하고 지역의 역사, 문화적 정체성을 세우는 작업입니다. 그러므로 한 번 잘 못 쓰여진 향토지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왜곡되게 할 수 있으며,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지역사를 배우게 하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지역에서 향토지라고 하면 시사(市史)나 군지(郡誌), 면지(面誌), 마을지 등과 ‘00시의 역사’, ‘00시의 문화유적’, ‘00시의 지리’, ‘00시의 인물’, ‘00시 민속지’, ‘00시 지명유래집’ 또는 000시의 역사와 문화유적‘ ’00시의 관방유적‘과 같은 단행본 및 지표조사보고서 등입니다. 이 가운데 시사(市史)나 군지(郡誌)는 발주처가 시(市), 군(郡)이며 ’편찬위원회‘가 구성되어 작업이 이뤄집니다. 하지만 많은 시, 군의 향토지들은 업적위주 또는 권위주의를 탈피하지 못하여 포장은 화려한데 내용이 빈약한 현상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문가 집단과 지역의 향토사가들이 연대하여 작업이 이뤄져야 합니다. 전문가집단은 지역의 세세한 상황을 알기 어렵고, 향토사가들은 사료에 대한 분석능력이나 전문적인 식견에서 부족한 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진위면지(1999)편찬부터 향토지 편찬에 참여하였습니다. 그 뒤로 평택시사(2001) 편찬에도 편찬위원으로 참여했고, 박물관 건립위원회, 도로지명개편위원회와 같은 관련 사업에도 참여했습니다. 이와 같은 사업에 참여하면서 유익한 점도 많았지만 많은 한계를 느꼈습니다. 특히 시사(市史)편찬이나 박물관 건립에서는 실무집단 중심이 아니라 지역안배 위주의 위원구성으로 진통을 겪었으며, 시대적 요구에 따라 분야별 분책이라던가, 시사편찬위의 상설화, 사료의 축적과 객관적 해석을 통한 집필과 같은 요구들이 거의 반영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향토지 편찬에 역사교육을 받은 교사들이 향토사가로서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랬을 때 향토지 편찬이 좀 더 나아질 수 있으며, 지역사회의 발전에도 이바지한다고 생각합니다.
관계기관이나 문화원에서 편찬하는 향토지 외에 올 해는 저의 연구 성과물을 책으로 엮으려고 합니다. 현재 계획된 것으로는 ‘평택의 역사와 문화유적’, ‘평택의 마을과 지명이야기Ⅰ’, ‘평택지방 답사길잡이’ 등입니다. 그리고 올 해 책 출판이 순조롭게 이뤄지면 다음해에는 ‘평택의 마을과 지명이야기Ⅱ’를 발간할 것이고, 그 뒤로는 ‘평택의 역사’. ‘평택의 지리’, ‘평택의 인물’, ‘평택의 민속’ 등을 계획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는 인터뷰 자료를 모아 ‘평택지방 민중생활사’를 정리하고 싶습니다.
7)단체의 설립과 운영
향토사연구는 함께 하는 공동작업입니다. 일단 분야도 다양하지만 지역의 일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함께 하고 연구 성과를 공유했을 때 더욱 빛이 나기 때문입니다. 저는 2002년 ‘평택향토문화동호회’라는 단체를 결성하였습니다. 이 단체는 조사와 연구, 답사, 연구성과의 나눔 등을 목적으로 결성되었고, 전직 문화원장, 향토사연구를 하는 교수, 교사 등 20여 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단체를 결성했지만 조직과 운영은 잘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회원의 대부분이 여러 직책과 활동을 겸하고 있는 명망가였기 때문에 한 단체에 역량을 모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에서도 2002년부터 평택참여자치시민연대와 ‘평택향토문화교실’을 시작하였습니다. 향토문화교실은 참여연대가 재정적 후원을 하였고 대부분의 강의는 제가 맡았습니다. 수강생은 15명 이내였고 여러 가지로 부족했지만 이 강좌로 향후 활동을 함께 할 동지들을 만난 것은 큰 수확이었습니다. 다음 해에는 평택지방 향토사 전반을 다시 검토한다는 마음으로 5개월 간 10번의 강좌와 5번의 답사를 계획하였습니다. 그리고 2004년부터는 평택 시민들에게 개관적이고 질 높은 향토문화유산을 안내한다는 취지 아래 평택시와 함께 ‘평택문화유산해설사’를 양성하였고, 향토문화교실도 평택의제 21과 경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평택향토문화학교’라는 이름으로 독자적으로 운용하였습니다. 특히 이 시기 향토문화학교는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는 강의를 지양하고 역사, 문화, 민속 등 분야 별로 나누어 좀 더 전문성을 부여한 강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평택지역 각 시민, 사회단체 안에 향토문화강좌를 개설하게 하고 강좌를 운용한 것도 작년부터의 소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년에는 평택 흥사단의 청소년문화유산 바로알기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으며, 평택남부노인복지회관의 ‘어르신 문화유산 안내자’교육, ‘전교조 어린이 평택문화바로알기’ 프로그램 등을 저희 단체가 담당하였습니다. 작년 겨울에는 시민과 어린이가 함께 볼 수 있는 영화프로그램 ‘영화로 떠나는 역사여행’을 송탄도립도사관에서 진행하였는데 시민들의 열띤 호응을 받았습니다. 2005년 여름방학에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향토문화체험학교-역사야 놀자~‘라는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으며, 가을에는 향토문화학교 2학기와 역사문화특강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단체활동은 향토사가들의 연구의 장이며 시민들과 나눔의 통로입니다. 저희 단체는 앞으로도 단체활동을 통하여 정기적인 향토답사프로그램, 강좌프로그램, 연구잡지 간행 등 다양한 활동을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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