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명당기념사업회

관음사 四溟大師 眞影 (충남 보령)

♧문화재 지킴이 2009. 7. 6. 18:11

관음사 四溟大師 眞影 

 

                            글 . 내포문화연구연합회 이사 任仁植

 

 

  그림 1)

      120×85 비단채색 19세기 충남보령시 관음사 소장

 

··················四溟大師眞影考察




1. 조사 신앙과 진영


불교의 맥은 스님을 통해 이어진다. 불교의 바른 깨달음을 얻기 위해 교리를 지키고 끊임없는 수행을 통해 그 정신이 이어진다. 특히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고승대덕은 후대 승려에게 훌륭한 스승으로 존숭되며, 僧寶로서 예배의 대상이 된다. 특히 스승과 제자사이의 師資相承이 강조되는 선종에서는 조사 숭배의 신앙이 특히 강렬하다. 존경하는 스승이 입적하면 그 제자들은 僧塔을 조성하여 사리를 봉안하고, 진영을 제작하여 眞影閣 또는 祖師殿에 모시고 존경과 추모의 정을 기리며 예배한다.

진영은 초상화를 일컫는데, 특히 佛家에서는 덕 높은 스님의 초상화를 말한다. 예로부터 초상화는 影 .眞 .像 등으로 불려왔는데 그 개념을 종합하면 가상(影) 속에 불변하는 본질(眞)이 깃들도록 그리는 것(像)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상의 외모인 조형적인 형태(寫形)를 넘어 그의 정신세계까지(寫心) 전해질 수 있도록 잇는 그대로 묘사되어야 한다. 화성(畵聖)으로 일컬어지는 고개지(顧愷之)가 ‘사람을 그리는 것이 가장 어렵고, 다음이 산수요, 그 다음이 개와 말이다’ 라고 한 것은 이러한 경지를 일컫는 것일 것이다. 그러므로 진영을 제작함에는 터럭 한 올이라도 같지 않으면 곧 타인( 一毫不似 便是他人)이라 할 정도로 사실성이 중시된다. 이러한 개념을 傳神寫照라 일컬어 왔다. 초상화에서 전신의 필요성에 대해 청대 沈宗蹇 芥舟學書編 傳神總論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畵法의 종류는 무척 많지만 그중 전신사조의 유래가 가장 오래며, 대개 그것으로써 古聖先賢의 정신을 후세에 전해내릴 수 있었다. 形이라 말하지 않고 貌라 말하지 않고 神이라 말하는 것은 천하의 사람 형은 같은 자가 있고 모습이 비슷한 자도 있지만 정신에 이르러서는 서로 같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작자가 만약 단지 形似만을 구한다면 수십인 가운데서도 또한 서로 닮은 자가 있을 것인 즉, 어찌 傳神 이라 일컬을 수 있겠는가.


禪家에서 고승의 진영은 스승에게서 제자로 법을 전하는 증명의 수단으로 授受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진영은 기념적인 초상화의 성격을 지니지만 조사신앙의 예배의 대상이 되는 佛畵로서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진영은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제작되어 왔으나 조선시대 이전의 것은 전해지는 것이 없다. 삼국시대에는 三國遺事 흥법편에 興輪寺 금당에 十聖(아도,염촉,혜숙,안함,의상,표훈,사파,원효,혜공,자장)을 봉안하였다는 기록이 있음으로 보아 본격적으로 고승의 초상조각을 제작하였으므로 진영도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통일신라나 고려시대의 비문이나 문집 등에는 고승진영에 대한 讚詩 등이 전해지고 있어 진영제작이 매우 활발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義天의 大覺國師文集에는 元曉, 義湘, 普德, 神林, 緣起대사 등의 진영에 대한 기록이 전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神行, 信忠, 道義, 眞表, 眞鑑, 弘覺, 無染 梵日, 道詵, 利嚴, 普耀스님 등의 진영이 제작되었음을 東國李相國集 등 여러 문집을 통해 확인할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고승진영이 더욱 활발히 제작되었는데 懶翁, 指空, 無鶴삼대사와 송광사 國師殿의 普照國師 知訥을 비롯한 16국사진영 등이 유명하다.

현존하는 고승의 진영은 모두 조선시대의 것이다. 그러나 그 주인공은 고려시대의 스님상들도 전해지는데 그것은 예배의 대상으로서 진영이 훼손이 되면 계속 옮겨 그려서( 移模)예배하였다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종파의 시조나 사찰의 창건주를 비롯한 고승을 그린 진영은 한 사찰에 여러 점 혹은 수십점씩 봉안되어 전해지고 있다. 또한 한 스님의 진영이 여러점이 제작되어 각기 다른 사찰에 봉안되는 경우가 많은데 종파의 시조나 국가의 기여도가 높은 고승의 경우는 현재 수십점의 진영이 전하고 있다. 그것은 그 스님이 여러 지역을 다니며 수도하거나 교화하여 각지에 흩어진 제자들이 각기 스승의 진영을 봉안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고승이자 의승대장이었던 西山大師 四溟大師의 진영은 현재도 전국 각 사찰에 많이 전한다.


2. 고승진영도의 형식


고승진영은 대체로 크게 2가지 형식으로 그려진다. 하나는 의자에 앉은 전신상, 다른 하나는 바닥에 가부좌한 평좌상이다. 의자상도 交椅坐像 혹은 족좌대에 신발을 벗어놓고 의자 위에서 跏趺坐 앉는 형식으로 나뉘어 진다. 지물은 주로 拂子 拄杖子 혹은 念珠를 지니는 것이 일반적이다. 취세는 정면관도 있으나 대체로 비스듬히 앉은 左顔七分面이나 右顔七分面이 보편적이다.

현존 진영을 통해 볼 때 대체로 고려시대 스님의 진영은 모두 의자에 앉은 전신상을 취하는데 이러한 형식을 선종에서는 頂相이라고 일컫는다. 정상은 제자에게 전수되어 傳法의 증표가 되기도 하는데, 중국 唐.宋대 선승의 어록에 정상을 위한 讚文을 빈번히 볼 수 있어 정상 수수가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말기 이래 선종이 크게 보급됨에 따라 고려시대까지 주로 정상 수수가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말기이래 선종이 크게 보급됨에 따라 고려시대까지 주로 정상형식이 보편적이었을 것이다. 현존하는 진영 중 범일국사, 지공선사, 나옹선사, 보조국사, 대각국사, 각진국사, 등 신라와 고려시대 스님들의 진영은 이러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조선시대 스님의 진영은 의자상도 있으나 대부분은 바닥에 가부좌한 평좌상이 주를 이루며, 바닥에는 彩氈이나 화문석이 깔리기도 하며, 바닥에 앉았으나 등받이가 표현된 상도 있다. 조선후기의 진영 중에 화문석이 깔린 바닥에 앉아 왼손으로 어깨에 기댄 주장자를 잡고, 무릎위에 놓인 오른손으로 염주를 쥔 모습이 가장 흔한 형식이다.

화면의 중앙에는 크게 像容을 그리고, 상단의 오른쪽이나 왼쪽에 길게 주인공의 존호를 밝인 影題가 적혀있다. 그 주위에 간혹 제찬이나 화기를 기록하기도 하는데 현존하는 진영 중 제작연대가 밝혀진 것은 드문 편이다.

이렇게 고승진영이 구도와 형식은 대체로 큰 변화가 없으므로 개인적인 특징은 모든 초상화가 그렇듯 얼굴을 통해 드러난다. 얼굴의 윤곽과 골상, 이목구비의 모습, 주름, 시선과 눈빛, 눈썹 등의 사실적인 형사(形似)를 통한 인상에서 고승이 정신이 배어나게 된다.

현존하는 진영은 대부분 조선후기에 제작된 것들이다. 그중 17세기 중엽부터 18세기 말경까지의 작품은 그다지 많지는 않다. 19세기부터는 특히 많은 진영들이 제작되는데 앞시기에 그려졌던 진영을 이모하거나 새로이 제작하는 한편, 종파와 문파에 구애됨이 없이 해당 사찰의 주지나 고승의 경우도 대부분 진영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경향은 승탑의 대중화와도 궤를 같이 한다. 고려시대까지는 國師 王師, 각 종파의 개산조 등이 대상이 되었으나 조선후기가 되면 각 사찰의 주지도 승탑을 세우고 진영을 제작하여 사찰마다 부도전에는 많은 수의 승탑이 모여있고, 진영각에도 다량의 진영이 제작되어 봉안되어 있다. 또한 19세기 이후의 진영은 주로 바닥에 화문석을 깔고 가부좌한 모습이 대두분이다. 등받이가 표현되는 경우도 대체로 19세기 이후에 나타나는 것 같다. 자세는 비스듬한 측면관이 대부분이지만 간혹 정면관을 취한 것도 있으며, 경전이 펼쳐진 경상을 앞에 놓은 형식도 등장한다. 대체로 19세기 이후에는 승복이 잿빛으로 표현되는 예가 많으며 옷주름선은 굵고 진한 선으로 표현하고 주위에 선염을 가하여 입체감을 표현하지만 묘선은 이완되거나 매너리즘의 경향을 보이는 것이 대부분이다.


3. 사명대사 진영의 특징


사명대사 惟政은 스승인 서산대사의 문하에 들어가 전국각지에서 수행하였다. 서산대사 등과 함께 의승군으로 활약하였으나 늘 문예를 게을리하지 않아 수많은 유묵도 남기고 있다. 사명대사의 진영은 전국 각 사찰과 국외에 현재 30점 정도 알려져있다. 아래의 목록에서 보듯 대부분 의자상이 많으며, 은해사 백흥암본 외에는 모두 측면관을 취한다.

사명대사의 진영은 조선시대의 스님이지만 대부분 의자에 앉은 정상형식을 취하고 있고, 다른 스님들의 진영과는 달리 길고 풍성한 수염이 빠짐없이 표현되어 있으며, 날카롭지만 깊이있는 눈매를 보여주고 있고 당당한 체구와 함께 의승장 다운 위엄이 서려있다. 뿐만 아니라 오랜 수행과 연마에서 오는 깊은 품위도 베어나오고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봉안되지만 해인사, 표충사, 갑사 등에서는 서산대사와 영규대사와 함께 봉안되기도 한다. 현존하는 사명당의 진영은 전국의 각 사찰에서 17세기에서 20세기까지 꾸준히 제작되었는데 그중 동화사본, 보스톤미술관소장본, 해인사 홍제암본, 동국대학교소장본등이 작품성이 뛰어난 것으로 여겨진다.


* 권선문 표지에 나타난 사명대사 진영

 


▶충남 보령시 웅천읍 사명당절  관음사에서 발견된 권선문  표지

 

 

 ▶권선문  내용

 ▶권선문 내용

 ▶권선문  내용

 ▶권선문  내용(신흥사 기성회 명단)

 ▶권선문  내용

 ▶권선문  내용 (찬조자 명단)

 ▶권선문 이 발결된 사명당절 관음사

 ▶서산대사와 사명대사 의  영정이 모셔진 관음사  산신각

 ▶창건기가 기록된 현판

 ▶산신각에 모셔온 서산대사와 사명대사 영정

 ▶권선문  .불상 .현판  .와편 과 돌에 세겨진 글씨

 

'(사)사명당기념사업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가야산 해인사  (0) 2009.09.08
추풍사  (0) 2009.08.08
사명대사 茶詩  (0) 2009.07.02
[스크랩] 사명대사(四溟大師)의 애국  (0) 2009.06.18
[스크랩] 각몽가/영인스님  (0) 2009.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