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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명대사(四溟大師)의 애국

♧문화재 지킴이 2009. 6. 18. 18:16

사명대사(四溟大師)의 애국

석상난생초(石上難生草)  방중난기운(房中難起雲)
여이하산조(汝爾何山鳥)  내참봉황군(來參鳳凰群)
                                   덕천가강(德川家康)


여(汝); 너, 아랫사람을 의미함. 이(爾); 너. 당신.
하(何);어찌하여, 무엇하러. 봉황(鳳凰); 불사조의 새를 의미.

돌 위에서는 풀이 자라기가 어렵고,
방안에서는 구름이 피어오르기가 어려운데,
너는 어찌하여 산에 사는 새 한 마리가
봉황의 무리에 와서 함께하였느냐?

 

아본청산학(我本靑山鶴)  상유오색운(常遊五色雲)
일조운무진(一朝雲霧盡)  오락학계군(誤落壑鷄?)
                               사명대사(四溟大師)


상(常);항상, 늘. 유(遊); 놀다. 즐겁게 지내다. 무(霧);안개.
진(盡); 없어지다. 오(誤); 어긋나다. 실수하다. 학(壑);골 산골자기
계(鷄);닭. 군(?);무리, 군(群)과 같은 뜻. 명(溟);바다. 남북의 끝.

나는 본래 청산에서 사는 학으로,
항상 오색의 구름 속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침 구름과 안개가 겉이더니,
잘못하여 닭 무리가 노는 구렁텅이로 떨어졌다.

 

사명대사의 본래 이름은 임 용규이며, 묘향산 보현사로 가서 서산대사 제자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을 모아 서산대사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1604년 2월 오대산에서 스승 사명대사의 부음을 받고 묘향산으로 가던 중 선조의 부름을 받고 조정으로 가서 일본과의 강화를 위해 사신으로 임명되었다.

국서를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가 8개월 동안 노력하여 강화를 체결하고 왜군에게 잡혀간 3500명의 동포를 데리고 1905년 4월에 귀국하였다.

위글은 그 때 일본의 덕천가강과 함께한 자리에서 읊은 시이다.

자기들을 봉황에 비유하고 사명대사를 산에 사는 산새로 비유하여 봉황이 노는 자리에 끼어든 보잘 것 없는 산새라고 비웃자...
대사는 원래 학인데 잘못하여 닭이 노는 무리에 떨어졌다고 답을 하여 적장의 거드름을 눌러버린 시의 구절이다.

사명대사의 사심(私心)이 없는 투철한 국가관과 열정의 애국심,

적국으로 가서도 전혀 기(氣)가 죽지 않고 당당한 대사의 기개,

적장의 비웃는 시를 즉시 받아넘기는 지식과 지혜 슬기,
임진왜란을 마무리 하고 포로를 데리고 온 외교적 협상 능력,
8개월이란 긴 기간 동안 포기하지 않은 그의 끈기와 인내심,

    우리 청년이 본받아야 할 큰 가르침입니다.

출처 : 병원구내식당
글쓴이 : 왕오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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