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석 박사를 아시나요?

“조선 수군 ‘첨자진’은 이순신이 창안한 듯”

♧문화재 지킴이 2009. 11. 3. 16:26
“조선 수군 ‘첨자진’은 이순신이 창안한 듯”
 
이동시 진법… 전투 땐 학익진
병서-훈련교범 분석 논문 나와



이순신의 대표적 진법 가운데 하나인 학익진 그림. 동아일보 자료 사진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이 사용했던 학익진()의 대오가 왜 두 줄이었는지, 첨자진()에서 학익진으로 어떻게 전환됐는지 등에 관한 연구논문이 나왔다.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의 노승석 교수는 “정조가 편찬한 병서 ‘어정병학통()’의 수군 관련 부분과 순조 때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군훈련교범 ‘수조절차()’를 최근 완역해 이를 알아냈다”고 28일 밝혔다. 그동안 첨자진은 이동할 때의 진법이고 학익진은 전투 시의 진법이라는 사실은 알려졌으나 실제 전투에서 어떻게 활용했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연구는 없었다.



‘어정병학통’에 실린 첨자진 그림. 사진 제공 이순신연구소
첨자진은 말 그대로 첨()자 형태를 이룬다. 어정병학통에는 “첨자진을 형성하고 일제히 전진하다 척후선이 경보를 알리면 각 배는 일()자로 벌려 선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 일자 진형이 바로 학익진이다. 책에는 학익진이 두 겹이라는 내용도 나온다. 첨자진의 양쪽 날개인 전사()와 우사()는 학익진의 앞줄을, 양쪽 다리인 좌사()와 후사()는 뒷줄을 형성했다.

장학근 이순신연구소장은 “조선 육군의 전통적인 오위진법()과 중국의 쐐기진법을 결합한 것이 첨자진”이라며 “임진왜란 이후에만 첨자진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볼 때 중국의 병서와 육군 전술에 능통했던 이순신이 이 첨자진을 창안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학익진을 두 겹으로 만든 이유는 “장전 시간이 오래 걸리는 총통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장 소장은 분석했다. 앞줄의 배에서 총통을 발사하는 사이에 뒷줄에서 발사를 준비한 뒤 자리를 바꿔가면서 총통을 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