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보령 지역신문을 바라보며...

♧문화재 지킴이 2009. 9. 3. 18:29

♣ 보령 지역신문을 바라 보며....

                                                                     2009 년 9월3 일 음 (7월15일)

칠월 백중일을 맞아 사찰을 다녀오는데 노스님이 걱정을 하시며 불가(佛家)에서는 원인 과 결과를 인과응보(因果應報)니 자업자득(自業自得) 이라 표현을 한다. 요즘 보령의 지역신문 간에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아직 결과를 예단 하기는 어렵지만 언론인 들이 하는 일치고는 민망스럽다며 걱정을 하시기에 대신 글을 옮긴다....

 

고사성어와 이솝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

 

이도살삼사는 글자 그대로 복숭아 2개로 세 명의 무사를 죽였다는 말이다.

이 이야기는 안자춘추晏子春秋에 있는 이야기에서 나온 말인데 ‘동주열국지’의 이야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안자晏子 즉 안영晏嬰은 제나라 경공景公을 도와 한동안 침체했던 제나라를 다시 살기좋은 강대국으로 끌어올린 명재상이다. 그의 외교적 수완의 일면은 ‘강남귤이 탱자 된다’란 제목에 나오지만 이 이야기 역시 그의 남다른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유명한 사건이다.

경공의 신변을 보호하고 있는 세 명의 장사가 있었다. 그들은 똑같이 맨주먹으로 범을 쳐서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진 용사들로 각각 그 나름대로의 공을 세운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수양이 부족한 탓으로 툭하면 자신들의 공을 자랑하며 법을 무시하고 멋대로 행동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 셋으로 인해 왕실의 체통은 말이 아니었다. 안영은 경공에게 그들을 쫒아버리라고 수차례 권했으나 경공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들의 용력을 아껴서가 아니라 후환이 두려웠던 것이다.

안영은 어느 날 노나라 임금을 초대한 자리에서 ‘만수금도萬壽金桃’라 불리는 크기가 대접만한 복숭아 여섯 개를 가져다가 두 임금과 두 재상들이 각각 하나씩 먹고 두 개를 남긴 다음 경공에게 이렇게 청했다.

“아직 봉숭아 두 개가 남았습니다. 임금께서 여러 신하들 중에 가장 공로가 큰 사람을 자진해서 말하게 하여 그중 공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 복숭아를 상으로 내리심이 어떠하겠습니까?”

“그거 참으로 좋은 생각이오.”하고 경공은 좌ㆍ우 시신을 통해 “뜰아래 있는 모든 신하들 중에 자기가 이 복숭아를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진해서 나와 말하라. 상국(相國=안영)이 그 공을 평하여 복숭아를 나눠 주리라”하고 말했다.

그러자 세 사람 중 한명인 공손첩公孫捷이 앞으로 나와 연회석에 서서 말하길“ 옛날 임금을 모시고 동산桐山에서 사냥을 할 때, 불시에 습격해 온 호랑이를 맨손으로 쳐 죽였습니다. 이 공로가 어떻습니까?” 그 말을 듣고 안자가 말했다. “그 공이 참으로 큽니다. 술 한 잔과 복숭아 하나를 내리심이 마땅한 줄 압니다.”

그러자 또 한 사람인 고야자古冶子가 벌떡 일어나 연회석으로 나오며 말했다.

“호랑이를 죽인 일쯤은 그리 대단할 것이 없습니다. 나는 일찍이 임금님을 모시고 황하를 건너갈 때 배 안의 말을 몰고 들어가는 괴물을 10리를 따라가 죽이고 말을 되찾아 왔습니다. 이 공은 어떻습니까?” 안자가 말하기 전에 경공이 입을 열었다. “그 때 장군이 아니었더라면 배는 틀림없이 뒤집히고 말았을 것이다. 이것은 세상에 둘도 없는 공이다. 술과 복숭아를 경을 안주고 누굴 주겠는가.” 그러자 안영은 황급히 술과 복숭아를 두 사람에게 주었다.

그 때 마지막 한 사람인 전개강田開彊이 옷을 벗어부치고 달려 나오듯 하며 말했다. “나는 일찍이 임금의 명령으로 서徐를 쳐서 그의 유명한 장수를 베고, 5백 명의 군사를 사로잡음으로서 서군徐君이 두려워 뇌물을 바치고 맹약을 빌었으며, 이로 인해 담郯과 거筥가 겁을 먹고 일시에 다 모여들어 우리 임금으로 맹주가 되게 하였으니 이 공로면 복숭아를 먹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안영은 공손히 임금께 아뢰었다. “개강의 공로는 두 장군에 비해 열 배는 큽니다. 안타깝게도 복숭아가 없으니 술만 한 잔 내리시고 복숭아는 명년으로 미루는 수밖에 없을 줄 아옵니다.” 그 말에 경공도 “경의 공이 가장 큰데, 아깝게도 일찍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큰 공을 상주지 못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가슴이 아프구려.”하고 말했다.

전개강은 칼자루를 어루만지며 “호랑이를 죽이고 괴물을 죽이는 일은 작은 일이다. 나는 천리 길을 산을 넘고 물을 건너 피나는 싸움으로 큰 공을 세우고도 오히려 복숭아를 먹지 못하고 두 나라 임금과 신하들이 모인 앞에서 욕을 당하고 만대의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무슨 면목으로 조정에 선단 말인가” 하고 말을 마치자 칼을 휘둘러 자신의 목을 쳐서 죽었다. 그러자 공손첩이 크게 놀라 칼을 뽑아들며 “우리는 공이 적으면서 복숭아를 먹었는데 전군田君은 공이 큰데도 도리어 복숭아를 못 먹었다. 복숭아를 받아 사양하지 못했으니 청렴하지가 못했고 또한 남이 죽는 것을 보고도 따라 죽지 못한다면 이는 용기가 없는 것이다.”하고 말을 마치자 역시 제 목을 쳐서 죽고 말았다. 그러자 고야자가 분을 못 참고 크게 외치며 “우리 세 사람은 함께 살고 함께 죽기로 맹세를 했었다. 두 사람이 이미 죽었으니 나 혼자 무슨 낯으로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하고 역시 자기 목을 쳐 죽었다.

그런데 정작 이 사건이 더욱 유명하게 된 것은 제갈량諸葛亮이 이들 세 사람의 무덤이 있는 탕음리蕩陰里를 지나다가 읊었다는 ‘양보음梁甫吟’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시를 소개 하면 다음과 같다.

步出齊東門 걸어서 제나라 동문을 나가

遙望蕩陰里 멀리 탕음리를 바라보니

里中有三墳 마을 가운데 세 무덤이 있는데

纍纍正相以 나란히 겹쳐 서로 꼭 같다.

問是誰家塚 이것이 뉘 집 무덤이냐고 물었더니

田彊古冶子 전강과 고야자라고 한다.

力能排南山 힘은 능히 남산을 밀어내고

文能絶地紀 문은 능히 지기를 끊는다.

一朝被陰謀 하루아침에 음모를 만나

二桃殺三士 복숭아 두 개로 세 장사를 죽였다.

誰能爲此者 누가 능히 이 짓을 했는가

相國齊晏子 상국인 제나라 안자였다.

 

뒤에 이태백李太白이 또 같은 ‘양보음’을 지어

힘이 남산을 밀어내는 세 장사를

제나라 재상이 죽이며 두 복숭아를 썼다.

力排南山三壯士

齊相殺之費二桃

고 함으로써 이 이야기는 점점 더 유명해 졌다.

이 이야기에서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는 계략에 의해 상대방을 자멸하게 만드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이솝우화에도 비슷한 얘기가 있다.

 

세 마리의 소와 사자

세 마리의 소가 사이좋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자 한 마리가 소를 잡아먹고 싶어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자는 꾀를 내어 그들을 서로 싸우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따로따로 떨어지게 되자 차례로 하나씩 잡아먹고 말았습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습니다. 적의 말을 믿지 말고, 듣기 싫어도 친구의 말을 믿어야 합니다. 상대편에 대한 분열획책은 국가 대 국가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수법입니다.

 

안자춘추는 춘추시대 재상 중 관중과 더불어 2대 명재상으로 꼽는 안자의 행적을 후세인들이 기록한 책이다. 제나라의 세 임금(영공, 장공, 경공)을 섬긴 안자는 키가

작고 볼품없게 생겼지만 임기응변에 강하고 담대한 성격을 가졌다. 제갈량의 시에서는 비겁하고 음험하게 비춰지나 그의 전체적인 면은 아닌 듯하다. 사마천은 말하길 ‘만약 오늘날 안영이 살아 있다면 그의 말고삐 잡는 것도 마다치 않겠다.’고 했을 정도다. ‘남귤북지’라는 고사에 대해 알아보자.

 

남귤북지南橘北枳

같은 종의 식물이나 동물도 기후와 풍토가 다르면 그 모양과 성질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같은 사람이라도 그가 살고 있는 주위환경이 달라지면 생각과 행동이 달라진다. 이 같은 진리를 보여준 것이 여기에 나오는 ‘남귤북지’이다. 남귤북지는 ‘강 남쪽에 심는 귤을 강 북쪽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다.

춘추春秋시대 말기에 제齊나라에 유명한 안영晏嬰이란 재상이 있었다. 공자도 그를 형님처럼 대했다는 이 안영은 지혜와 정략이 뛰어난데다가 구변과 담력이 또한 대단했고, 특히 키가 작은 것으로 더욱 이름이 알려졌다,

어느 해 초楚나라 영왕靈王이 이 안영을 자기나라로 초청했다. 안영이 하도 유명하다니까 얼굴이라도 한번 보았으면 하는 어린애 같은 호기심과 그토록 각국에서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있는 안영을 한 번 보기 좋게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타고난 심술 때문이었다.

영왕은 간단한 인사말을 끝내기가 바쁘게 이렇게 입을 연다.

“제나라에는 사람이 없소?”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길가는 사람은 어깨를 마주 비비고 발꿈치를 서로 밟고 지나가는 형국입니다.”

“그렇다면 하필 경과 같은 사람을 사신으로 보낸 까닭이 뭐요?”

안영의 키 작은 것을 비웃어 하는 말이었다. 외국 사신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큰 실례였지만 초나라 왕은 당시 제나라를 대단치 않게 보았기 때문에 이런 농담을 함부로 했다. 안영은 서슴지 않고 태연히 대답했다.

“그 까닭은 이러 하옵니다. 저의 나라에선 사신을 보낼 때 상대방 나라에 맞게 사람을 골라서 보내는 관례가 있습니다. 즉 작은 나라에는 작은 사람을 보내고 큰 나라에는 큰 사람을 보내는데, 신은 그 중에서도 키가 가장 작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뽑혀서 초나라로 오게 된 것입니다.”

은근히 상대방을 놀려 주려다가 보기 좋게 반격의 기습을 당하게 된 초왕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첫 번째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다음 두 번째 계획이 진행되었다. 왕이 바라보고 있는 뜰 아래로 멀리 포졸들이 죄인을 묶어 앞세우고 지나갔다.

“여봐라!”

왕은 포졸을 불러 세웠다.

“그 죄인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

포졸이 대답했다.

“제나라 사람입니다.”

“죄명이 무엇이냐?”

“절도죄를 범했습니다.”

초왕은 안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나라 사람은 원래 도둑질을 잘하오?”

계획치고는 참으로 유치하고 조잡한 것이다. 하지만 당하는 안영에게는 이 이상 더 큰 모욕은 없었다. 그러나 안영은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란 듯 초연한 태도로 이렇게 대답했다.

“강 남쪽에 귤이 있는데 그것을 강 북쪽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되고 마는 것은 토질 때문입니다. 제나라 사람이 제나라에 있을 때는 도둑질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랐는데 그가 초나라로 와서 도둑질을 한 것을 보면 역시 초나라의 풍토 때문인 줄로 아옵니다.”

며칠을 두고 세운 계획이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게 되자, 초왕은 그제야 안영에게 항복을 하고 말았다.

“애당초 선생을 욕보일 생각이었는데 결과는 과인이 도리어 욕을 당하게 되었구려.”하고는 크게 잔치를 벌여 안영을 환대하는 한편, 다시는 제나라를 넘볼 생각을 못했다. 안영이 만들어 낸 말은 아니지만 역시 그것은 진리였다. 식물은 풍토가 중요하고 사람은 환경이 중요하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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