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문화포럼

엄승용의 세계유산의 정치경제학

♧문화재 지킴이 2009. 7. 22. 08:48

 

[엄승용] 세계유산의 정치경제학
                   中都日報 2009년7월22일 21면   기고中

 

 

 

[엄승용] 세계유산의 정치경제학
[수요광장] 문화재청 문화재정책국장
[대전=중도일보]
종전(終戰) 후 국가 재건과 도시화의 물결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최초로 환경문제를 다루는 국제회의가 1972년 스톡홀름에서 열렸다 이 회의는 1992년의 환경정상회담과 2002년의 지속가능발전 정상회담이 열리게 된 근거를 마련하였을 뿐만 아니라 세계유산 보호에 관한 결의안을 처음으로 만들어 내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 결의안에 따라 같은 해 세계 문화와 자연유산 보호에 관한 협약이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되었고 1975년 20개국의 비준을 받아 효력을 발휘하면서 세계유산위원회는 인류유산 보호에 관한 핵심적 국제기구가 되었다 세계유산은 회원국들이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가진 문화 또는 자연유산을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하여 국제적 기준에 따른 보호를 통해 인류문명의 맥을 잇기 위해 창안된 제도다 지난 달 말 스페인에서 열린 33차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서 11개의 문화유산과 2개의 자연유산이 추가되면서 세계유산 목록은 총 890개가 되었다

세계유산은 역사적 가치를 대표하는 상징성뿐만 아니라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기회도 제공한다 세계유산에 관한 통계가 국제사회의 정치경제적 지형도를 반영하고 있는 것은 어느 정도 그러한 이유에서 온 현상일 것이다 유럽과 북미가 세계유산 목록의 절반을 차지하는데 반하여 아프리카와 아랍국가는 각각 9%와 7% 밖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세계유산을 갖지 못한 국가가 38개국이나 되는데 대부분이 앙골라 미얀마 등과 같은 후진국들이다 이에 반하여 44개의 세계유산을 가진 이탈리아 33개의 세계유산을 가진 프랑스와 독일 등을 선두로 하는 세계유산 다량 보유국은 대부분이 잘 사는 나라들이다

물론 물려받은 역사문화자원이 풍부하면 다수의 세계유산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세계유산 제도는 특정 문명권의 나라에게만 혜택을 주지 않는다 세계유산 등재여부를 결정짓는 두 가지 요소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와 당사국 정부의 정책적 의지다

최근 들어 후자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각국 정부가 세계유산 신청서에서 보존 관리 계획을 강조하는데 정성을 쏟고 있다 선진국일수록 세계유산이 많은 것은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진정한 가치를 규명할 수 있는 지식이 충분히 축적되어 있고 보존제도가 잘 정비되어 있고 정부와 시민사회의 협력체제가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세계유산이 늘어가니 국가 이미지가 좋아지고 관광객들이 늘어 국부 창출에 기여하게 된다

우리 나라의 세계유산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이번에 등재된 조선왕릉을 포함하면 9개가 되고 북한의 고구려 고분군을 포함하면 우리 민족은 10개나 되는 세계유산을 가지고 있다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와 관련된 유적들이 골고루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단지 백제역사만 빠져있을 뿐이다 향후 세계유산으로 신청할 잠정목록에 공주의 무열왕릉이 있긴 하지만 이미 왕릉 카테고리에 속한 세계유산이 많기 때문에 등재 가능성이 희박하다 백제역사재현단지는 단순한 쇼룸이지 결코 세계유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백제문화를 대표하는 세계유산의 유일한 희망은 부여와 공주의 고도다 이들 문화권에 속하는 문화적 요소 자연생태자원 그리고 무형 유산을 집대성하여 세계유산으로 신청하면 그야말로 획기적인 세계유산이 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지방정부의 의지와 전략이다 단기적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산업단지 조성에만 치중하면 백제역사를 대표하는 세계유산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역사적 정체성과 자신감을 찾지 못하면 경제적 풍요 속에서도 정신적 공허를 면치 못한다

이런 점에서 선진국들이 개발을 억제하면서 세계유산을 가꾸는 지혜가 국내의 지역발전에도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문화적 빈부가 결국 경제적 빈부와 닮아 간다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