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신문

교장 비리

♧문화재 지킴이 2010. 2. 11. 09:53

 

[신목민학]<526>교장 비리

[대전=중도일보]  2010년 2월 11일

말종 기자’사윗감 딱지 놓는 교장들
다산 ‘말씀’ 안지킨 대전시교육청 왜?
비리교장은 ‘탐관’일 뿐 스승 아니다


▲김학용 논설위원
기자는 욕먹는 직업이다. 경찰관, 세무공무원과 더불어 부정적 이미지가 강한 직종이다. 과거엔 특히 그랬다. 못되고 싸가지 없는 '종족'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것이 꼭 편견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나는 기자들을 가장 싫어하는 대표적인 사람들이 학교선생들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분명치 않다. 기자에 대한 설문조사 같은 것을 본 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기자 사윗감을 딱지 놓은 교장’ 이야기를 들은 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전도가 유망한 한 기자 총각이 ‘기자라는 이유’로 어떤 교장선생으로부터 딱지를 맞고 그의 사위가 될 수 없었다는 얘기를 꽤 오래 전에 들은 적이 있다. 그와 유사한 사례를 두 번이나 들었다. 기자로서 자괴감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그런 교장들이 오히려 존경스러웠다.

기자를 ‘인간 말종’쯤으로 보는 것도, 교장을 존경스럽게만 보는 것도 잘못이지만 대개 우리는 교장에 대해선 좀 다른 이미지를 가져왔다. 세상 물정도 잘 모르는, 그래서 비리와 부패로부터도 가장 거리가 먼 사람들로 여겨왔다.

그런 교장들이 요즘 도마 위에 올라있다. 교장비리가 전국적으로 터지고 있다. 대전도 예외가 아니다. 대전의 모 중학교 교장은 미술품을 구입한 것처럼 표구업자와 짜고 학교운영비를 횡령하는가 하면 학교 돈으로 자기 책을 구매했다가 감사원에 적발됐다. 감사원은 대전시교육청에 파면을 요구했다.

교육계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학교비리는 끝이 없다. 학교 공사를 발주하거나 비품을 구입할 때는 으레 뒷돈이 전달된다. 작년부터 각 학교는 교과부가 지원해주는 예산으로 영어전용교실을 꾸미고 있다. 여기에도 일부 교장들은 뒷돈을 요구하고 있다. 사업비의 10% 정도인 500만원이 건네진다고 한다.

‘교장비리’는 과거에도 있었다. 다산(茶山)은 “수령은 향교(鄕校)의 교장(校長) 적임자를 얻으면 향교에 다음과 같이 첩(帖)을 내린다”면서 '학교비리 예방법'을 목민심서에 적었다. 오늘날 수령은 교장 임명권을 가진 시도교육감이라 할 수 있다.

“명색이 선비가 되어 아전 집에 출입하며 기생방에 출입하거나 술집에 드나들며 행동거지를 비루하게 한 자에 대해서는 본관이 당연히 여러 길로 염탐하여 별도로 엄중히 징계할 것이며, 청금록(靑衿錄·향교에 있는 유생의 명부)에서 영구히 삭제해 버리는 ‘황첨(黃簽)의 벌’이 있을 것이니, 모두 조심해야 할 것이다.” 황첨은 청금록에 기록된 이름을 삭제한다는 의미로 노란색 도장을 찍는다는 뜻이다. 비리 교장으로 드러나 파면을 당하는 꼴과 같다.

‘학교비리’를 사전 감찰하고 징계해야 하는 것은 시도교육감의 업무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대전 모 중학교장의 미술품 구매 비리는 작년부터 소문이 퍼졌으나 대전시교육청은 손을 놓고 있었다. 비리 염탐은커녕 풍문이 온동네에 퍼진 뒤에도 교육청은 귀를 막고 있었다는 뜻이다. 학교비리, 교장비리가 교육청과 무관하지 않을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작년 대전시교육감 선거에 나섰던 어떤 후보는 당시 선거비용으로 21억원을 썼다고 한다. 시교육감은 최소 20억~30억원, 대전시장은 최소 50억원 이상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정도 돈을 쓰고 당선되면 누구든 본전 뽑을 궁리를 하게 될 것이다. 결국 교육청은 교육청대로, 학교는 학교대로 해먹는다. 때론 교육청과 학교가 짜고 해먹는다. 학교비리가 끊이지 않는 또 하나의 구조적 요인이다.

‘교장’은 인자함과 깨끗함의 상징이었다. 지금도 ‘교장선생님 댁’은 여느 집보다 더 존경받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옛 향교에서도 부패와 비리가 행해졌듯 지금도 부패한 학교 부패한 교장들이 없지 않다. 엉터리 교장들이 교육계 전체에 먹칠을 하고 있다. 부패한 교장은 교장이 아니다. 척결해야 할 탐관(貪官)이요 오리(汚吏)일 뿐이다. 탐관오리에겐 죗값을 철저하게 물어야 한다. 그게 학교 부패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길이다. /김학용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