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최치원 선생

구산선문 태안사.실상사를 가다

♧문화재 지킴이 2009. 11. 16. 08:58

문화 유적 답사 記

9산 선문  태안사 . 실상사를 가다

일시:2009년 11월 15일 일요일

 

[[태안사 泰安寺]]

 

하심(下心)이 무엇인지 몸소 배울 수 있어요

깨달음은 보는 것도 아니고 느끼는 것도 아닙니다. 수행을 통해서 깨달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깨달음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사찰이 있을까요. 깨달음의

표상을 친견하는 우리들의 마음 자세를 가르쳐주는 적멸의 공간이 있습니다.

 

곡성 동리산 태안사는 우리나라 선종이 처음 열린 아홉 산문 가운데 하나로 지금까지 법등이 꺼지지 않고 이어 내려온 도량입니다. 1200년 동안 태안사는

 수행공간의 쇄락과 전소의 아픔 등을 겪으면서도 오직 하나 지켜온 것이 있습니다. 용맹정진하는 수행스님들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바로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의 세계는 경내 뒤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깨달음의 세계입니다. 이 깨달음의 세계에서 적멸의 즐거움을 즐기는 스님은 바로 혜철스님입니다. 스님은 이곳에 동리산문을 개창한

 주인공입니다. 스님의 육신을 사라졌지만 법신은 적인선사조륜청정탑으로 남아 수행승들에게 가르침은 전하고 있습니다.

 

적인선사의 가르침은 하심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스님을 친견하기 위해서는 머리를 숙여야 합니다. 수행자든 일반 관광객이든 머리를 숙여야만 스님의

법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심을 가르쳐주는 것은 바로 배알문입니다. 적인선사의 적멸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배알문입니다. 배알문의

 높이는 낮습니다. 머리를 숙여야만 적멸의 공간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후세의 사람들이 어떤 의도와 생각으로 만든 문이지는 알 수 없지만,

 배알문 속에는 산사의 길을 걸어 들어온 모든 사람들에게 처음 가르치는 ‘할’이 담겨있습니다.

 

태안사를 참배하는 사람들은 꼭 적인선사의 깨침의 세계에 들어가십시오. 적인선사의 오묘한 가르침을 배울 수 없지만, 배알문에 담겨 있는 하심만이라도

가져온다면 여러분은 큰 수확을 얻은 것입니다.

 

 

 

 

 

 

 

 

 

 

 

 

 

 

 

 

 

 

 

 

 

 

 

 

 

 

 백장암 삼층석탑(국보 제10호 )를 가다

 

 

 

 

 

 

 

 

 

 

 

 

 실상사(實相寺)

실상사는 통일신라시대인 828년(흥덕왕 3)에 홍척국사(洪陟國師)가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로 자리를 잡은 유서깊은 사찰이다. 선종(禪宗)이 처음 전래된 것은 신라 제36대 혜공왕 대이지만 발전을 보지 못하다가, 도의국가(道義國師)와 함께 당나라로 건너가 수학하고 돌아온 홍척스님이 흥덕왕의 초청으로 법을 강론함으로써 구산선문 중 최초 사찰로 개창하게 된 것이다.

홍척스님은 이곳에 실상사를 세워 많은 제자를 배출하여 전국에 포교하였는데 이들을 실상사파(實相寺派)라 불렀다. 그의 제자로 수철(秀澈)ㆍ편운(片雲) 두 대사가 나와 이 종산(宗山)을 더욱 크게 번창시켰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어 약 200년 동안 스님들은 부속암자인 백장암(百丈庵)에서 기거하다가, 1690년(숙종 16)에 이르러 침허대사(枕虛大師)가 300여 명의 스님들과 함께 조정에 절의 중창을 상소하여 36동의 건물을 세우는 쾌거를 이룩하기도 하였다.

 

오늘날 실상사는 구산선문 최초가람이라는 역사와 더불어 승가의 미래와 사부대중 공동체로서 사찰의 오랜 전통을 되살리기 위해 생명살림 운동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이를 위해 1996년에 승가의 미래를 위해 인재를 육성하는 화엄학림을 개설하였고, 1999년에는 '생태적 가치와 자립적 삶'을 건학이념으로 귀농전문 교육기관인 실상사 귀농학교를 설립하다. 또한 2001년에는 자연과 함께 하는 체험학습을 목표로 작은 학교인 '선돌학교'를 열기도 하였다. 이러한 실상사의 승풍 진작과 생명운동은 우리나라 불교의 미래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본래의 진면목을 되뇌이게 하는 실상(實相). 사찰명이 지닌 철학적인 이름과, 속세를 벗어난 고찰(古刹)의 고즈넉한 품격으로 인해 실상사는 여러 시인들이 즐겨 은유의 대상으로 삼기도

눈발에 가려 實相은 보이지 않고 지나온 발자욱 역시 눈에 가리웠으므로

나는 어디에 와 있는지 알지 못한다. 實相은 어디 있는가.

바람은 바삐바삐 지나가 버리고 눈을 쓴 댓잎의 손가락은 너무 많아

그 방향을 가늠할 수는 없다. 實相은 어디 있는가.

한 발 한 발 찍은 생각들은 거친 눈보라로 날려가 버리고

어쩌다 손바닥 위에 놓인 생각들은 눈처럼 녹아버려 그 온기를 잡을 수

없다.

實相은 정말 있는가. 눈발에 가려 實相은 보이지 않고

흰 눈에 갇혀 눈감은 것처럼 어두운 저녁.

마음의 집을 허물어 버리고 절 한 채를 들여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