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문화행사

[스크랩] 실상사 實相寺 : 09. 03. 08

♧문화재 지킴이 2009. 11. 10. 16:34


                                                                     실상사 實相寺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사적 제309호인 실상사는 구산선문의 최초 사찰로서

신라 흥덕왕 3년(828)에 홍척국사께서 현 위치에 실상산파를 개창하였고,

국보 1점, 보물 11점, 중요민속자료 1점, 지방문화재 3점 등 다수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귀중한 문화유적지이다.

또한 풍수지리설에 의하여

우리나라 땅의 정기가 일본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도록 4천근의 약사여래불을 봉안하고,

3층 쌍탑을 세워 지맥을 누르게 하였다는 전설과 함께

보광전 법당에 있는 동종에는 일본 열도가 새겨져 있는데 타종시 동경을 강타하여

우리나라 국운을 융창하게 한다는 호국사찰이다.  

 

실상사 석장생 石長栍 : 중요민속자료 제15호

이 돌장승들은 실상사를 지키는 상징적인 조각품으로,

원래 냇가에 모두 네 개가 있었다.

실상사로 가는 도중 내를 건너기 전에 두 개의 장승이 서 있었는데,

1936년 홍수 때 그 중 하나가 쓸려 내려가 현재는 세 개만 남았다.

장승들의 높이는 대략 2.5-2.9m, 너비 40-50cm 가량이며,

머리에 모자를 쓰고 튀어 나온 둥근 눈에 주먹코와 커다란 귀를 갖는 등 비슷한 양식을 보인다.

장승에 새긴 기록으로 보아, 같은 시기인 조선 영조1년(1725)에 세운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장승은 보통 남녀로 배치해 음양의 조화를 꾀하는데, 이곳의 장승은 모두 남자 형태이다.

귀신을 쫓는 장승들의 표정이 험상궂기는커녕 오히려 익살스럽고 해학적이다.  

 

 

 

# 실상사 안내 문門

 

# 천왕문

    - 한 가운데로 석등이 보인다. 

 

# 실상사 삼층석탑 三層石塔 : 보물 제37호

이 쌍둥이 석탑은 통일신라 말 실상사를 처음 지으면서 함께 세운 것이다.

높이는 5.4m로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석탑이다.

층마다 몸체와 지붕을 각각 별개의 돌로 만들고,

각층 몸체의 모퉁이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 아래 면은 수평이나 윗면 모퉁이 부분은 위로 치켜 올려졌다.

받침부가 비교적 커서 균형감은 덜하나 전체적이 모습은 경쾌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서쪽 탑은 아쉽게도 꼭대기 일부분을 잃어버렸으나,

두 석탑 모두 윗부분이 비교적 원래대로 남아 있어 그 화려했던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동쪽 탑>

                      

 

 <서  탑>

 

 

# 실상사 석등石燈 : 보물 제35호

이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것으로,

각 부분을 팔각형으로 만들어 그 시대 석등의 일반적인 형식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이 석등은 기둥이 둥근 장고長鼓 모양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 석등과 다르다.

지붕 위에 또 하나의 작은 원형지붕을 얹은 점 역시 독특하다.

받침과 기둥, 몸체 등 곳곳에 연꽃을 비롯한 다양한 무늬를 새기어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부처의 자비를 담은 불빛을 온 누리에 환하게 비추려는 듯

몸체의 여덟 면 모두에 큼직한 사각창火窓을 내었다.  

 

# 약사전  

 

실상사 동종銅鐘 : 전북 유형문화재 제137호

보광전 안에 있는 이 종은 조선 숙종 20년(1694)에 만든 것으로

전체 높이 123cm, 넓이는 83cm이다.

종 머리에는 용뉴라는 용모양의 고리가 있고, 그 옆에는 한국 종의 전통 요소인 용통이란 굵은 관을 달았다.

종 어깨의 둘레를 따라가며 네 방향에 유곽이라 부르는 큼직한 사각형을 하나씩 새겼다.

네 개의 유곽마다 그 안에 꽃무늬를 세 개씩 3열로 배열하였으며 유곽들 사이에 보살상을 조각하였다.

용통의 장식이 간소하며 종의 밑자락에도 무늬를 새기지 않았다.

 몸통에 새긴 딱딱한 선녀상을 볼 때, 조선 후기 종의 장식이 형식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철제여래좌상鐵製如來坐像 : 보물 제41호

통일신라 말 지방의 여러 선종 사찰에서 쇠를 녹여 많은 불상을 만들었는데,

이 불상은 그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높이 2.69m이다.

무릎 아래는 복원한 것이며, 깨어진 두 손도 근래에 찾아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하여 붙였다.

두리 뭉실한 머리 윤곽, 촘촘한 고수머리, 원만하고 시원스런 얼굴, 넓은 가슴에 갸름한 허리 등으로 보아

신라시대 불상의 특징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그러면서도 근엄하고 딱딱한 표정을 띤 이 불상은 온유한 생동감을 보이던

앞 시대의 불상과 달라 신라 말 불상의 변천 양상을 가늠케 한다.


# 증각대사응료탑 證覺大師凝蓼塔 : 보물 제38호

이 부도탑浮屠塔은 통일신라 말 홍척洪陟스님을 추모하여 세운 것으로,

경내에 함께 있는 그의 제자 수철 秀澈스님의 부도탑과 비슷한 형식으로 만들었다.

당나라에 다녀온 홍척스님은 선종을 널리 전파하였으며, 실상사를 처음으로 열었다.

탑 몸체에 새긴 문짝 무늬는 윗부분이 반원형인 자물쇠와 문고리까지 세밀하게 새긴 것이 눈길을 끈다.

지붕은 목조탑의 모습을 본 따 정교하게 조각하였으며

탑의 높이는 2.4m이다.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 후반기의 우수한 조각술을 보여주는 훌륭한 작품이다.

 

# 증각대사응료탑비 證覺大師凝蓼塔碑 : 보물 제39호

이 비석은 홍척洪陟스님을 추모하여 옆의 부도탑과 함께 세운 것이다.

증각은 홍척스님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공덕을 기려 임금이 내린 칭호이며, 일명 남한南漢이라고도 부른다.

그는 통일신라시대의 유명한 스님으로 지리산 자락에 실상사를 처음으로 세웠다.

아쉽게도 현재 비의 몸체는 없어지고 비 머리와 받침돌만 남아 있다.

받침돌에는 용머리 모양으로 표현하던 일반적인 추세와는 달리 거북머리를 그대로 조각하였다.

비의 장식이 전체적으로 과장되지 않고 사실적이어서 우리나라 고전 비석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 수철화상능가보월탑 秀澈和尙愣伽寶月塔 : 보물 제33호

이 탑은 통일신라 진성여왕 7년(893) 수철스님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행적과 뜻을 기려 세운 부도탑이다.

실상사를 처음 세운 홍척스님의 제자인 수철스님은 스승의 뜻을 이어받아 실상사의 지속적인 융성에 크게 공헌했다.

높이 3m인 이 탑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부도탑으로 팔각형을 기본형태로 삼고 있다.

목조건축의 형식을 본 따 세밀하게 조각해 놓은 지붕에서

석공의 뛰어난 조각술을 엿볼 수 있다.

 

# 수철화상능가보월탑비 秀澈和尙愣伽寶月塔碑

 

# 극락전

 

 

# 범종각

 

 

# 기와로 쌓은 탑

 

 

출처 : 바람꽃과 솔나리
글쓴이 : ma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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