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문화포럼

서해문화포럼 창립 초청 특별 강연

♧문화재 지킴이 2009. 10. 8. 08:09

 

권영민

대학 교수, 평론가
출생
1948년 10월 5일, 충남 보령시
데뷔
197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가 등단
학력
서울대학교 대학원 문학 박사
경력
1981년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2006년 문학사상 편집 주간

 

 

이상의 시대정신은 지금도 유효해”

10년 연구 결실…오현스님 충고 덕
만해축전 ‘대표 브랜드’ 개발 필요

 

 

암울한 식민시대, 정체성을 잃은 조선인들은 시대정신이 없었지만 시대를 앞서 살아간 시인은 시대를 읽으며 고뇌했다. 〈날개〉 〈오감도〉 등의 작품을 남기고 28살의 나이로 홀연히 세상을 등진 이상(李箱, 1910-37· 본명 김해경). 4월 17일은 그의 기일(忌日)이다. 기일에 맞춰 서울대 국문과 권영민 교수가 10년 연구 끝에 다섯 권짜리 〈이상전집(문학에디션 뿔 刊)〉을 출간했다. 만해축전 시인대회를 기획하기도 했던 그를 만나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작가 이상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와 만해축전 미래상 등을 물어봤다.

 

△ 작가 이상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에 대한 평가나 이해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작가 이상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 1937년 봄에 일본에서 사망했으니까 이상이 작가로 활동한 기간은 1931년부터 1936년까지 불과 5년밖에 되지 않다. 불과 5년간 창작활동을 한 이상이라는 작가가 시대를 초월해 문제작가로 남아 있는 것은 시대를 앞선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지금도 유효하다. 아니, 아직도 해석의 여지가 많다. 그의 인생과 문학이 신비주의로 흐른 것은 다른 작가들과 달리 그와 함께 활동한 정지용, 김기림, 이태준, 박태원 등이 월북해 그의 행보를 정확히 짚어줄 증인이 없었던 것도 한몫 했다.

 

△ 이상전집 출간의 의의는?

이번 작업은 이상 문학 텍스트 원전을 완벽하게 복원하고 각각의 성격에 맞는 텍스트적 위상을 회복하는데 중점을 뒀다. 특히 어구 풀이 정도로 만족해야 했던 기존의 주석 방법을 벗어나 텍스트의 의미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해설식 주석’을 채택했다. 이 과정을 통해 그동안 난해 어구로 방치되어온 대부분의 구절들의 의미를 해명할 수 있게 됐다.

 

△기존 연구 오류 중 바로잡은 것을 소개해 달라.

-시 〈且8氏의 出發〉에서 차(且)라는 한자와 ‘8’이란 숫자는 남성의 성기를 암시하는 일종의 성적기호로 해석됐다. 하지만 작품의 제목에서 등장한 ‘且8氏’는 이상의 친구인 화가 구본웅의 ‘구(具)씨’를 의미한다. 아라비아 숫자로 표기된 ‘8’을 한자로 고치면 ‘팔(八)’자가 된다.
‘차(且)’자와 ‘8자’를 글자 그대로 아래위로 붙여보면 그 모양은 구본웅의 외양을 형상적으로 암시한다.
시〈오감도시제 5호〉에서도 작품에 삽입된 도형을 여성의 자궁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한 경우가 많지만 이 도형은 흉부 X선 촬영후 그 사진의 영상을 놓고 기하학적으로 추상화시킨 것이다. 이 시는 이상이 폐결핵으로 손상된 폐부를 사진을 통해 알게 된 후 죽음에 대한공포와 절망감을 밀도있게 그려낸 시다.

 

△백담사 회주 오현스님과 각별한 관계로 알고 있다….

-오현스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99년 제1회 만해축전에서다. 처음 만나 인사를 드렸더니 스님은 나에게 “문학은 깊은 연못이야. 물고기가 다 자라서 하늘로 올라갔는데 평론하는 사람들은 뒤늦게 연못에 뛰어들어 고기를 잡겠다고 하는 허망한 존재들이야. 글을 쓰려면 시나 소설을 쓰지 평론을 하나?”라고 질책했다.
어쩌면 평론이라는 것이 스님 말대로 허망한 작업일 수도 있다. 허망한 작업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문학작품을 더욱 면밀히 분석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이상의 작품을 10년간 연구한 것도 이런 마음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만해축전과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만해축전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특정 분야 전문가들만 모이는 것이 아니라 지역민들까지 참여하는 열린 축전을 만든 것은 대단히 높이 살 일이다. 문제는 축전기간이 아니라 끝난 다음이다. 축전 후에도 만해마을이 살아 움직이는 공간이 되어야 하는데 아직은 미흡한 것 같다.

 

△만해축전 프로그램 중 개선할 점은?

-다양한 단체와 기구, 기관들이 축전 기간 내내 이벤트를 진행하는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그런 다양함 가운데 축전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상징적인 프로그램이 없어 대단히 유감이다. 이번 축전에서 이거 하나만은 꼭 참가해야 겠다는 상징적 프로그램을 매년 축전때 마다 선보여야 할 것이다.

 

△김성동의 만다라 이후 이렇다 할 불교문학이 없습니다. 이유는?
-작가를 탓할 것이 아니라 불교문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불교의 대중화가 시급하다. 과거 서정주, 김동리 등은 불교와 인연이 많았고 불교교리에 대해서도 정통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에 불교색채가 묻어나왔다. 하지만 현대 작가들 중에는 불교를 접한 사람이 드물다. 불교가 생활속에서 자리 잡히면 불교문학도 살아날 것이다. 

 김치중 기자 bomin@jubul.co.kr

 

 

권영민  교수
충남보령 출신으로 서울대 문리대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오노마토포이아의 문학적 한계성〉이 당선돼 등단했다. 하버드 대학 객원교수 등을 역임하고 현재 서울대 인문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5년 만해축전 ‘세계평화시인대회’ 준비위원장을 역임했고, 만해학술대상을 수여하는 등 불교와 인연을 맺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