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문화행사

김광제 선생을 아시나요?

♧문화재 지킴이 2009. 7. 20. 09:14

89주년  추모행사  (안내)

 

2009年 7月 30일(陰6月9日/木)은 독립지사 金光濟선생 殉國89周年이 됩니다.
지난 해에는 志士의 추모사업회가 발기되어 묘역정화사업을 준공하였으며,
국채보상운동기념비 건립제막도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지사의 애국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崇慕사업을 계속 추진할 것이여,
매년 追慕祭도 가질 예정입니다 .따라서 금년 89주년 추모제를 아래와 같이
거행하오니 추모사업회 회원 및 지역유지와 종친 여러분의 많은參禮를  
바랍니다.
                                             2009. 7.  
                                  獨立志士金光濟追慕事業會
                                           會      長  李 完 相
                                           運營委員  金 光 煥
                                           運營委員  金 孝 冀
                                                     추진위원   任 仁 植          

                                           總      務  金 鼎 元
                                           遺族代表  金 柄 烈

                       일시 ; 2009년 7월 30일(음6월9일/木) 12시
                       장소 : 웅천읍평리 陽村 志士墓域
                       연락처:추모사업회장 Tel:041-932-2111/041-936-1452
                                  총무 김정원 MP:016-452-3405
                                  유족 김병열 Tel:02-3486-9340/010-2512-9340
                                  평리 김기홍 MP:011-9801-3096
행사 안내 문의 : 임인식 (추진위원)   011-402-3359                   

 

                          자세한 사항은 인터넷 홈페이지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www.dongyangja.com

 

 

 
김광제(金光濟 1866.7.1~1920.7.24)·서상돈(徐相敦 1850.11.10~1913.6.30) 선생


 


「2월의 독립운동가」공적개요

김광제(金光濟 1866.7.1~1920.7.24)·서상돈(徐相敦 1850.11.10~1913.6.30) 선생


국가보훈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국채보상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국채보상운동을 발의 주도하신 김광제·서상돈 선생 두 분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김광제 선생은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한학을 수학한 뒤 관직으로 나아가 훈련원 첨정, 호남시찰사, 동래경무관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동래경무관으로 재직 중, 1905년 일제가 강제로 을사조약을 체결하여 외교권을 박탈하자 이에 크게 저항하였다. 관직을 사직하면서 친일파 탄핵과 내정의 부정부패 일소를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던 것이다. 이로 인해 전남 고군산도로 유배되었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고, 1906년 대구로 옮겨 서상돈 선생과 함께 광문사를 설립하여 사장에 취임하였다.


  서상돈 선생은 경북 김천에서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 보부상으로 출발하여 대구의 경제권을 좌우할 정도의 큰 재산을 모았다. 천주교의 영향으로 일찍이 신사고와 근대의식을 가져 독립협회가 창설되자 여기에 적극 참여하였다. 독립협회의 재무담당 간부로 활동하는 한편, 1898년 만민공동회에 참여하여 외세의 내정간섭을 규탄하며 국권수호와 민권신장에 힘썼다. 하지만 수구파의 탄압으로 독립협회가 해산되자 대구로 내려와 김광제 선생과 함께 광문사를 세워 부사장이 되었다.


  광문사는 외국의 선진 학문을 소개하고 실학 서적을 번역 편찬하여 근대사상을 전파하고, 자주자강의식을 고취하는 계몽운동을 펼쳤다. 문화사업을 통한 광문사의 애국계몽운동의 중심에는 사장인 김광제 선생과 부사장인 서상돈 선생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외세의 간섭으로 인한 국망의 위기가 과다한 국가의 빚, 즉 국채로 인한 것으로 인식하고 국채보상운동의 뜻을 갖게 되었다.


  1907년 1월 광문사 특별회의를 마친 뒤 서상돈 선생의 발의와 김광제 선생의 적극 찬동으로 국채보상운동의 횃불을 올렸다. 금주·단연으로 의연금을 모아 국채 1,300만원을 상환함으로써 자주독립국가를 이루자는 국채보상운동의 물결은 이후 전국 각지로 파급되어 거족적인 민족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이 같은 국채보상운동은 대구에 조직된 국채보상연합회의소가 주도하였고, 그 중심에는 이 운동을 발의하여 주도한 김광제 선생과 서상돈 선생이 있었던 것이다.


  이와 함께 김광제 선생은 대한자강회·대한협회 등 정치단체에 참여하고, 교남학회 등 교육단체를 세워 국민계몽을 통한 실력양성에 힘썼다. 경술국치 이후에도 만주에 일신학교를 세워 민족교육을 실시하였고, 1920년 제2의 3·1운동을 추진하여 꺾이지 않는 항일의지를 분출하였다. 나아가 조선노동대회라는 노동운동 단체를 조직하여 민중계몽과 민족의식 고취에 노력하다, 1920년 7월 24일 55세를 일기로 서거하였다.


  서상돈 선생은 일제의 탄압으로 국채보상운동이 좌절되자 사업 활동에 전념하여 실업진흥을 통한 민족실력양성에 애쓰다, 1913년 6월 30일 64세를 일기로 서거하였다.


 정부는 두 분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김광제 선생, 1999년 서상돈 선생에게 각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독립기념관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는 선생의 뜻과 공적을 기리기 위해 별도의 전시실을 마련하여 관련자료와 사진을 2월 한 달간 전시하는 한편, 순국선열유족회에서도 선생에 대한 공훈선양 학술강연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 김광제 선생 묘역정화사업 봉사 (보령시사회복지협의회)

 

문화재 지킴이 "우리힘으로"

보령시 사회복지협의회 7기회원

박종철기자, jc1601@naver.com

등록일: 2009-04-27 오전 7:20:49

 
보령시 사회복지협의회(회장 오치인)가 문화재 지킴이 활동을 새로운 사업으로 선정, 이를 지속적으로 전개한다는 방침이다.

보령시 사회복지협의회는 이같은 사업을 펼치기 위해 (사)사명당기념사업회보령지부(지부장 석일정, 천수암 주지)의 후원을 받기로 했으며 활동은 매월 1회씩 실시할 계획이다.

이와함께 보령시사회복지협의회는 시민대학 7기생을 중심으로 40여명의 봉사단을 구성, 최초 사업으로 웅천읍 수부리에 소재한 애국지사 석람 김광제 선생 묘역에서 잡초 제거와 묘역 정비 활동을 24일 펼쳤다.

회원들은 이날 내포문화연구연합회 임인식 이사로 부터 김광제 선생의 업적 및 행적에 대한 설명을 들었으며 이를 계기로 문화재 주변 청소를 비롯 정화활동, 문화재모니터링, 문화재 홍보활동 등을 적극 벌여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