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시 종교단체현황(사찰,암자)

[스크랩] 왕대사

♧문화재 지킴이 2009. 7. 12. 18:17

 

 

 

 

 

 

 

望大川磨涯佛寺,,망대천마애불사
往舟來船昔古史,,왕주래선석고사
出將入相得三韓,,출장입상득삼한
南賢農婦皆渺事,,남현농부개묘사

큰 바다가 바라보이는
마애부처가 있는 절
가는 배 오는 배,, 옛날 역사지
밖에선 장군 안에선 재상
드뎌 삼한 땅을 얻었지
남쪽 나라 어진 농부의 아내
모두
아득한 저쪽 얘기지,,















賢農婦皆渺事,,남현농부개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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望大川磨涯佛寺,,    망대천마애불사
往舟來船昔古史,,    왕주래선석고사
出將入相得三韓,,    출장입상득삼한
南賢農婦皆渺事,,    남현농부개묘사

큰 바다가 바라보이는 마애부처가 있는 절
가는 배 오는 배,, 옛날 역사지
밖에선 장군 안에선 재상 드뎌 삼한 땅을 얻었지
남쪽 나라 어진 농부의 아내 모두아득한 저쪽 얘기지,,



충남 보령시 내항동에 위치한 왕대사는 신라 경순왕 때의 문화유적인 왕대사마애불로

잘 알려진 절이다.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이 이곳에 머물렀다고 하여

왕대산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왕대사의 이름도 여기서 유래하였다.

왕대사마애불은 왕대사 서쪽 암벽에 음각으로 새겨진 벽화이며 천년의 오랜 세월 동안 비바람에

풍화되어 많이 흐릿해졌지만 미륵불  어깨부분의 법의와 좌측몸통 뒤에서 나오는 신광이

잘 표현되어 예술적인 가치가 높은 문화 유적이다.
왕대사는 바위산을 뒤로 하여지은 절이라 여기저기 온통 바위로 둘러싸여 있고,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에는 어른키 만하게 차곡차곡 쌓아놓은 큰 돌탑들과

정갈한 돌담 위를 따라  불심을 가득 담아  나란히 놓여진 아기자기한 작은 돌탑들이 인상적이다. 
왕대사는 대웅전 한 채와 사무실로 쓰는 건물등 전체적인 구조가 아담하고 정갈한 분위기의
절이며 절벽 위에 위치한 대웅전 앞으로 넓게보이는 대천항과 서해대교의 전경은 답답한

가슴 탁 트이게 한다.

 

 

1990년 9월 27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317호로 지정되었다. 왕대사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나발(螺)이며, 머리 둘레에는 보주형()의 광배()가 있다. 얼굴은 마멸이 심해 식별이 곤란하고, 귀가 지나치게 커서 얼굴 전체의 균형이 일그러져 보인다. 목 부위는 축약되어 턱과 가슴 부위가 이어져 있고 턱밑에 삼도가 나란히 조각된 흔적이 희미하게 보인다.

법의()는 심하게 마멸되어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고 수인()은 양손이 배와 가슴 부위에서 모아져 있는 정도로만 확인된다. 다리 부분을 포함하여 그 아랫부분은 선각의 흔적을 확인하기 어려운데 이는 원래부터 고의적으로 조각을 생략한 것인지, 마멸로 인하여 형태가 지워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흑운모 화강암에 선각되어 있는데, 전체적으로 녹물에 의하여 붉은 줄이 나 있으며 보존 상태가 매우 좋지 못하다.

 

이 절은 신라시대의 옛 절이 아니고, 새로이 몇년전에 신축한 건축물이다.


 








 

출처 : 보령에세이 아카데미
글쓴이 : 헹글라이더활공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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