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천임씨 종친회

풍천임씨웅천읍 종친회정기총회 및 척사대회

♧문화재 지킴이 2010. 2. 27. 15:02

 

풍천임씨(豊川任氏)웅천읍 종친회 정기총회 및 척사대회


 혈육의 정으로 조상의 위대한 역사전통 계승과 뿌리의식 고취와 화합하는 친목모임


           일시 : 2010년 2월 27일 (토)10시30분

     장소 : 보령시 웅천읍사무소 회의실

     내용 : 2010년 정기총회 및 척사대회


 시조 임온(任溫)은 중국 사람으로 고려 때 우리나라에 건너와 황해도 풍천에 살았다. 시조의 6세손 임주(任澍) 에 이르기까지 풍천에 살면서 후손들이

풍천을 본관으로 삼았다.


 풍천임씨는 고려 충열왕 때 안찰사를 지낸 임주의 아들 임자송, 임자순 대에서 백파와 중파로 나뉘면서 고루 인물을 배출, 번성하게 된다.


특히 충남 보령시 웅천읍은  풍천임씨의 모밭이라 할수있을 정도의 집성촌이다. 이곳 보령 일대에는 풍천임씨 1천3백여 가구가 집단을 이루어 살고 있다.

 특히 웅천읍 에는 3백여 가구 가 살고있다.


 풍천임씨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6백여 년 전. 고려 공민왕 말년 임자순(任子順 민부전서)의 큰 아들 정승공(政丞公) 임향 (任珦 8세) 이 신돈에게

 쫓겨 홍성으로 유배됐다. 그 뒤 남포 죽도로 이배 되어 귀양을 살던중  귀양살이가 풀려 돌아가던 시기에 이성계의 조선 개국으로 인한 신조정의

부름을 받았으나 고려에 대한 불사이군(不事二君) 정신으로 절의(節義)를 지키며 남포(藍浦)오상동(五相洞)으로 숨어들어 시서(詩書)를 즐기며 일생을 마치 었다. 

 그 이후부터 풍천임씨는 이곳에서 터주 대감 노릇을 하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부터 대성으로 기록되며 대대로 600년을 살고 있으며

시조인 정승공 임향 묘소가 웅천읍 평리 동막동에 위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