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문동 칩십이인보
벽고(碧皐)장대열 지음
정승묘(政丞墓)
쪽물가 대숲섬에
길손이 찾아 들어
사립문 여민 한압
새 이름 불러 주니
반가워 벙근 가슴에
봄이 먼저 물들다.
1. 임향(任珦)
* 태어나고 돌아가신 때를 잘 알 수 없다. 고려말(高麗末)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의절신(義節臣)이다.
* 휘(諱)가 향(向)이다. 처음에는 향(珦)이었는데 조선조 문종의 휘(諱)가 향(珦)이어서 향(向)으로 바꿨다. 벼슬을 별칭으로 불러서 정승공(政丞公)이라고 하며, 본관(本貫)은 풍천(豐川)이다.
* 임향(任珦)은 호(號)가 없어서 한가락 모임에서 남은(藍隱)이라는 호를 짓고 고유제(告由祭)를 지냈다. 남포(藍浦)로 유배(流配)되었지만 올바른 정신을 지킨 사람이라는 뜻이다.
* 임신변혁(壬申變革)후에 신조정에 협조하지 않고 남포현(藍浦縣) 웅치하(熊峙下)에 있는 주산면(珠山面)동오리(東五里)오상동(五相洞)에 은거(隱居) 하면서 시서(詩書)로 여생을 마쳤다.
* 임향(任珦)의 아들 임안길(任安吉)과 손자 임준(任俊)도 신조정의 부름을 물리치고 절개를 지킨 것으로 3대절문(三代節門)으로 널리 칭송을 받는다.
2. 임정승묘(任政丞墓)
* 정승묘는 충청남도(忠淸南道) 보령시(保寧市)웅천읍(熊川邑)평리(坪里)에 있는 동막산(東幕山) 염주봉 (念主峰) 아래 묘좌지원(卯坐之原)에 있다.
염주봉(念主峰)을 넘으면 한국수자원공사에서 만든 보령댐이 있다.
* 임향(任珦)의 5대 후손(五代後孫)에 임응규(任應奎)가 있다. 덕이 높은 승려(僧侶)로 호(號)는 사명당 (泗溟堂, 四溟堂)이고, 법명(法名)은 유정(惟政)이다. 묘향산에서 휴정(休政 西山大師)의 법통을 이었다.
사명당(四溟堂)은 상동암(上東庵)에서 소나기를 맞고 떨어지는 꽃잎을 보고 무상(無常)을 깨닫고 문도(門徒)들을 해산하고 홀로 참선에 들었다 .
*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에 승병을 모집하여 휴정(休政.서산대사)의 휘하에서 승군도통섭(僧軍都統攝)이 되어 연승의공을 세웠고 일본에 가서 3.500명의 포로를 데려온 것으로 명성이 높다 지금 대천고등학교의 교정에 기념비가 서있다.
주) |
* 쪽물가 : 남포(藍浦)를 우리말로 풀어씀.
* 대숲섶 : 죽도(竹島)의 섬이름을 우리말로 풀어씀.
* 한압 : 할아버지의 또 다른 단어.
* 새 이름을 불러주니 : 남은(藍隱)이라는 호(號)로 고유 제(告由祭)를 지낸 것.
* 참고자료: 한가락 시조집 17권(2007년). 여말 충의열전 (麗末忠義列傳. 1994)
고 려 의 꿈 (중관 최권흥 지음)
1. 정승공묘(政丞公墓) : 충청남도 웅천읍 평리 동막골에있는 고려말 충신 남은공 (藍隱公) 임향(任珦)묘소 .
2. 임향(任珦) : 어려서부터 특이하며 심신이 빼어나고 투철하였다.스승에게 경사를 공부할 때 눈으로 훑어보면 문득 다 이해를 하였다.일찍이 등과하여 요직을 두루거쳐 정승에 까지 올랐다. 때에 신돈이 재상이 되어 미숙하고 졸렬한 방법으로 급격하게 개혁의 정치를 펴다 마침내 상하에 갈등이 일어나고 재정이 피폐했다. 나라의 정치가 날로 그릇됨은 승려가 재상이 된 때문으로 고금에 큰 치욕임을 직간하다 마침내 홍주 고구도로 귀양을 갔다가 남포 죽도로 옮겨졌다. 임신변역 후 사면되어 새 조정에서 예로써 불렀으나 단호히 물리치고 남포현 주산면 동오리 오상동에 숨어들어가 두문불출하고 시서(詩書)를 즐기면서 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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