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풍천임씨 600년史

"뿌리깊은 나무가 열매도 건실해"

♧문화재 지킴이 2012. 5. 13. 13:32
"뿌리깊은 나무가 열매도 건실해"

한맺힌 역사를 찾아온 종인들 ...

 

 600년의 한 맺힌 역사를 찾아서 중국 길림성 집안시(集安市)에 거주하는  임무영(任茂榮30세손)종인 께서 물어

물어 충남 보령시 정승공(任珦) 묘역을 찾아 참배를 하고 뜻 깊은 만남과 족보를 확인하는  눈물겨운 상봉이

이루어졌다.

 

풍천임씨의 시련과 아픔의  역사를 중명이라도 하듯 100년의 세월을 넘어 4세(四世)를 지나 오늘에야

문중을찾아 역사적인 현장을 함께 하는 안내자로서 눈물이 너무 나와 가슴 아팠다.

 

이들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 초기에 경상도를 거점으로 많은 풍천임씨  종인들이 세거 하고 있었으나

울산 등지에서 임장군 (사명당)의 후예라는 이유로 일제의 탄압과 숭유억불정책으로 인한

조선말기 일본인들의 핍박으로 생계마저 곤란하게 되어 중국으로 대거 이주를 하게 되는데  가계를 보면 

 임온 시조로 부터 8세 정승공 임향 - 통례공 효곤 - 종원 - 진사 수성 -응기 ,응규(사명대사) ...

첩과 보첩을 정확히 보관하고 있었으며  30세(爀.熙) 임무웅 씨의 말에 의하면 증조부때 중국으로 가게 되어

할아버지, 아버지_(현재 86세 생존)까지 뿌리를 잊은 적이 없으며 대대로 가첩과 족보를 보관하여 오고  

 풍천임씨를 자랑스럽게 교육시켜 오던 중 현재 경기도 안산에 근로자로 4년째 거주하며 한시도 뿌리를 잊은 적이

없었는데 오늘에야 연락이 되어 정승공(임향)후예로 보령을 찾게 되었다고 했다.


일제강정기에 합천 해인사에 있는 사명당 석장비 비신이 1943년 합천경찰서장 다케우라가 민족의 혼을 불러일으킬

것을 염려하여 권총을 쏘아 파손한 예와 표충사 주변의 소나무를 사명당의 호가 松雲이라 하여

마구 베었다는 이야기 등은  일본인들에게는 사명당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가를  짐작은 가지만 우리 종인들의

핍박으로 기구한 운명의 역사를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이제 우리문중의 화합과 진실을 위하여 더욱 노력해야 할일 이다.

 

 

 

 

 

 

 

 

 

 

 

 

 

 

모산미슬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