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지킴이

광화문현판의 미래는… 한글? 한문?

♧문화재 지킴이 2012. 4. 17. 07:35
                                        광화문현판의 미래는…  한글?  한문?
                           문화재청 '광화문 현판 글씨 및 글씨체 의견수렴 공청회' 개최
 

 

문화재청(청장 김 찬)은 오는 17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광화문 현판 글씨 및 글씨체 의견수렴 공청회'를 개최한다고 10일 밝혔다.
 
'광화문 현판 글씨 및 글씨체 의견수렴 공청회'는 광화문 현판 글씨와 글씨체를

정하기에 앞서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한자 표기를

주장하고 있는 진태하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이사장과

한글 표기를 주장하고 있는 이대로 한말글문화협회 대표가

각각 주제발표를 할 계획이다.
 
또한 광화문 현판 관련 언론기고자, 역사·문화재분야, 문화예술분야,

관광분야, 학생 대표 등 각계 인사 9명이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번 공청회에서 논의된 내용들을 검토,

광화문 현판 제작에 참고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광화문(光化門)은 경복궁의 남쪽에 있는 정문이다. ‘왕의 큰 덕(德)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의미로

광화문(光化門)이라 이름 지었다. 1395년에 세워졌으며, 2층 누각인 광화문 앞의 양쪽에는 한 쌍의 해태

조각상이 자리잡고 있다. 광화문의 석축부에는 세 개의 홍예문이 있다.

가운데 문은 왕이 다니는 문이고, 나머지 좌우의 문은 신하들이 다니던 문이었다. 광화문의 천장에는

주작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광화문은 전쟁으로 두 차례 소실되었으며, 월대와 해태 등을 제외한 일부

복원공사가 완료되어 2010년 8월 15일에 공개되었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과 함께 방화로 소실되었으나, 조선 후기에 헌의대원왕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재건되었다복원 전의 광화문광화문은 일제강점기에 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그 위치가 옮겨졌으나, 한국 전쟁때 목조부분이 불에 타 없어졌다[1].

이후 1968년에 석축은 그대로 두고 현판은 새로 만들고 상부는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하고 자리는 경복궁의

본래축이 아닌 총독부건물의 축에 맞춰 재건축하였으나[2], 건축 전부터 겉모양만 복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지적이 있었다.[3]1995년에 문민정부에서는 2003년부터 광화문을 철거하고

 2009년까지 본래의 위치에서 석축 위의 목조 건물로 복원할 것을 발표하였다.[4]

  2006년에 문화재청 주도의 경복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기존의 광화문을 고종 중건기 모습으로

복원하기 위해 철거 · 해체하였다.[5] 광화문 복원 사업은 2010년 10월에 완료될 예정이었으나[6]

G20 서울 정상회의의 개최로 인해 앞당겨져 8월 15일 광복절에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광화문 편액(扁額)은 조선 후기 경복궁 중건 시 훈련대장(訓鍊大將)으로 영건도감 제조(營建都監 提調)를

 겸하여 서사관(書寫官)으로 광화문 편액을 쓴 임태영 장군의 서체를 원형 복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