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현판의 미래는… 한글? 한문? | |||
문화재청 '광화문 현판 글씨 및 글씨체 의견수렴 공청회' 개최 | |||
문화재청(청장 김 찬)은 오는 17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광화문 현판 글씨 및 글씨체 의견수렴 공청회'를 개최한다고 10일 밝혔다. 정하기에 앞서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한자 표기를 주장하고 있는 진태하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이사장과 한글 표기를 주장하고 있는 이대로 한말글문화협회 대표가 각각 주제발표를 할 계획이다. 관광분야, 학생 대표 등 각계 인사 9명이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광화문 현판 제작에 참고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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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光化門)은 경복궁의 남쪽에 있는 정문이다. ‘왕의 큰 덕(德)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의미로
광화문(光化門)이라 이름 지었다. 1395년에 세워졌으며, 2층 누각인 광화문 앞의 양쪽에는 한 쌍의 해태
조각상이 자리잡고 있다. 광화문의 석축부에는 세 개의 홍예문이 있다.
가운데 문은 왕이 다니는 문이고, 나머지 좌우의 문은 신하들이 다니던 문이었다. 광화문의 천장에는
주작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광화문은 전쟁으로 두 차례 소실되었으며, 월대와 해태 등을 제외한 일부
복원공사가 완료되어 2010년 8월 15일에 공개되었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과 함께 방화로 소실되었으나, 조선 후기에 헌의대원왕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재건되었다복원 전의 광화문광화문은 일제강점기에 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그 위치가 옮겨졌으나, 한국 전쟁때 목조부분이 불에 타 없어졌다[1].
이후 1968년에 석축은 그대로 두고 현판은 새로 만들고 상부는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하고 자리는 경복궁의
본래축이 아닌 총독부건물의 축에 맞춰 재건축하였으나[2], 건축 전부터 겉모양만 복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지적이 있었다.[3]1995년에 문민정부에서는 2003년부터 광화문을 철거하고
2009년까지 본래의 위치에서 석축 위의 목조 건물로 복원할 것을 발표하였다.[4]
2006년에 문화재청 주도의 경복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기존의 광화문을 고종 중건기 모습으로
복원하기 위해 철거 · 해체하였다.[5] 광화문 복원 사업은 2010년 10월에 완료될 예정이었으나[6]
G20 서울 정상회의의 개최로 인해 앞당겨져 8월 15일 광복절에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광화문 편액(扁額)은 조선 후기 경복궁 중건 시 훈련대장(訓鍊大將)으로 영건도감 제조(營建都監 提調)를
겸하여 서사관(書寫官)으로 광화문 편액을 쓴 임태영 장군의 서체를 원형 복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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