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문화행사

열린 불교문화원 개원법회보기

♧문화재 지킴이 2011. 10. 22. 14:23
열린 불교문화원 개원식 초청법회

 일시 :10월 22(토) 10시부터~~

내용 : 해월스님 초청 개원법회

 

 

 

 

 

 

 

 

 

 

 

 

 

 

인연의 ‘환’에 속지 말고 바로 보는 공부해야”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해인사 승가대학장 해월 스님… 보령 열린 불교문화원 특강 보기

보령시 오천면 선림사 (주지 선우스님 )에서는 보령시 동대동에 보령 열린 불교문화원을 개원 하였다.. 첫 날인 10월 22일 개원법회에는 해인사 승가대학장 해월 스님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주제로 법문을 했다. 이날 해월 스님은 인연 노름에 빠지지 말고, ‘상(相)’이 아닌 ‘성(性)’을 보는 공부를 할 것을 강조했다.

▲ 해월 스님은 인연을 바르게 볼 수 있는 공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젊은 시절 어느 날 전라도 내소사 근처의 허름한 식당에서 된장찌개를 시켜 먹었습니다. 그런데 된장 위에 구더기가 떠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주인 할머니에게 이걸 어떻게 먹겠냐고 따졌더니 할머니가 제 숟가락을 뺏어서는 된장을 휘휘 젓더군요. 그런데 이 할머니가 떠오르는 구더기들을 먹어버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할머니는 제게 “죽은 고기도 못 먹는 중이 산 도는 어떻게 닦냐?”라고 말했습니다. 기가 막힌 법문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밥이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살아있는 도를 어떻게 닦을 것인가, 무엇이 살아 있는 도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주제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 세상을 들여다보면 다 아픔이라는 것이 생깁니다. 아픔은 알고 보면 맹인, 맹지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만 모여 사는 곳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소리는 들을 수 있었죠. 그런데 이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늘 싸웠습니다. 왜냐하면 무엇을 본 적도 없이 자기 생각만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바꾸지 못하면 전부 아픔이 되는 것입니다. 한 생각을 바꾸지 못하고 자기 생각으로만 보는 것이 문제입니다. 살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생각은 인연으로부터 생긴 것입니다. 기쁨, 슬픔, 고통, 아픔, 즐거움 모두 인연 노름입니다.

현상계 모두가 ‘환’

제가 대구 동화사 옆 비루암 암주로 있을 때입니다. 한 신도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시주를 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묻더군요. 그런데 그 시주자가 나이가 많아 거동이 불편하다며 데리러 와달라고 했습니다. 그 때 제가 몸이 좀 아파서, 총무 보살이 데리고 왔는데, 참 잘 생긴 남자였습니다.

그는 충청도 세종시에 살았는데, 개발이 되면서 국가로부터 75억원을 보상받았습니다. 75억 중 아들에게 20억원을 주고 25억원이 남았는데, 도둑이 들까봐 걱정을 하던 중 대구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돈만 많으면 뭐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며 5억원을 시주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제 방으로 돌아와서 누워 있는데 이런 저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인연을 지었길래 5억원이 나한테 들어오나? 5억원이 들어오면 본사에 신고해야 하나? 해외로 가버릴까? 차를 바꿀까?”

부처님께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안 들고, 몸 아픈 것도 잊어진채 별 생각이 다 들더군요. 그런데 그 시주자가 집으로 돌아갈 때 쯤 급하게 절에 오느라 지갑을 두고 왔다며 차비로 10만원을 빌려달라고 하더군요. 내일 올 때 주겠다고 말입니다. 저는 마침 돈이 없어서 총무가 8만원을 빌려줬지요.

그 날 밤 저는 5억원 생각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 시주자는 오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한 달이 지나도 그 사람은 오지 않았습니다. 정말 그 사람이 제게 줄 5억원이 있었을까요? 시주할 돈도 없는데 5억원을 받겠다고 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입니다. 그게 바로 저였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다 자기 생각대로 인생을 꿈꾸고 무엇인가를 바라며 삽니다. 사바에서는 내가 모든 고통의 원인이며 이 현상계가 전부다 ‘환(幻)’입니다. 미모를 잡겠다고 노력해도 미모가 100년을 가지 못 합니다. 여러분 오늘 여기 오려고 화장품 쓴다고 명품 화장품 쓰셨죠? 그리고 이제 집에 가면 도로 지울 것이죠? 지울 것을 뭐하러 바릅니까. 중생들은 세상을 자기 생각대로 바르고, 입고, 생각하면서 사바라는 고통 속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성’을 보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

제가 토굴에서 생활할 때입니다. 당시 저는 결벽증이 있어서 지나가다가 누군가와 스치기만 해도 손을 깨끗이 씻어야 했고, 자다가도 12시에 일어나서 청소를 하고는 했습니다. 토굴에서도 유리창을 깨끗이 닦아놓고는 했습니다.

어느 날 새들이 유리창 아래에 잔뜩 죽어 있었습니다. 창이 너무 깨끗해서 새들이 그대로 날아가다가 부딪힌 것입니다. 너무 미안해서 새들을 잘 묻어줬습니다. 제 결벽증도 그 날로 사라졌습니다.

토굴 근처에 해당화가 하나 있었는데, 고지대라 제대로 피지도 못하고 시들시들 했습니다. 새 무덤을 그 밑에 마련했는데, 어느 날 보니 해당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었습니다. 가만히 꽃을 들여다보니 해당화 안에서 새들이 지저귀며 놀고 있었습니다. 윤회가 바로 이거구나 싶었습니다. 새들이 죽어가던 해당화를 아름답게 피어낸 것입니다.

목련 밑에 묻었다면 목련이 됐을 것이고, 라일락 밑에 묻었다면 라일락향이 되어 날아갔을 것입니다. 지나가는 고양이가 새들을 먹었다면 새들은 고양이가 되어 사는 것입니다. 인연이란 그런 것입니다. 그대로 다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작은 인연들이 흩어져서 다른 인연으로 붙는 것입니다. 인연은 모든 것이 모여야 생기는 것입니다.

윤회 속에는 끝없는 무명망식(無明妄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생각입니다. 생각 때문에 사람들이 아파하고 힘들어하면서 끝없이 윤회를 거듭합니다. 우리는 윤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여러분은 여기 오실 때 무엇을 타고 오셨습니까? 어떤 차를 타고 오셨건, 차를 분해하면 무엇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여기까지 인연을 타고 오신 겁니다. 지금 법당에 앉아있다고 생각하시지요? 법당을 해체하고 나면 무엇이 남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인연이라는 ‘상’만 보이지 ‘성’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스님들이 출가한 이유도 ‘상’을 넘어 ‘성’을 보기 위한 것이고, 이를 ‘견성’이라고 합니다. ‘성’을 보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에 와서는 청와대도 들리지 않고, 저처럼 가난한 스님을 찾아온다고 가정합시다. 오바마가 저를 10분만 만나고 가도 저는 무명에서 갑자기 큰스님이 됩니다. 대통령도 아니고 저를 만나고 갔으니 국가기관이 제게 관심을 가질 것이고, 사람들이 저를 보러 막 몰려들 것입니다. 복 없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을 만나면 이렇게 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붓다라는 깨달음의 성자 앞에 있습니다. 부처님을 만나면 오바마를 만난 것보다 못하겠습니까? 하루 1시간만 앉아서 안이비설신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명상 하십시오. 출가하고 30년 동안 생활해보니 명상이 정말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명상을 하며 앉아 있다 보면 나는 가만히 있어도 생각은 앉아 있지 못하고 동서남북으로 휘날립니다.

인도의 바라문 앙굴마라는 스승의 부인이 자신을 유혹하자 이를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그 부인은 남편에게 제자인 앙굴마라가 자신을 겁탈하려 했다고 누명을 씌웁니다. 이에 화가 난 스승은 앙굴마라에게 지나가는 사람 100명을 죽여 목걸이를 만들어야 부처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앙굴마라는 그 때부터 살인을 일삼게 됐습니다. 앙굴마라는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스승을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순수했습니다. 앙굴마라가 죽인 사람들의 숫자가 100명을 채울 무렵 부처님이 나타납니다. 앙굴마라가 부처님을 쫓아가는데, 아무리 쫓아가도 부처님과의 거리를 좁힐 수가 없었습니다. 부처님은 그대로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 때 부처님께서 “앙굴마라야. 나는 여기 멈춰있는데, 왜 너는 너의 마음을 멈추지 못 하느냐”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인연이 무너지는 ‘삼매’에 빠지자

생각을 멈추는 것이 ‘지관’입니다.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머리 속에서 수많은 인연이 허덕이기 때문에 마음이 가만히 있지를 못합니다. 자기정화는 불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고민하고, 나를 아는 것이 불교입니다. 여러분은 여기 오셔서 무엇을 할 것입니까. 설법을 듣고, 공양을 올리는 것은 결국 나는 누구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북송 때의 문인 황정견은 ‘수류화개’라는 시에서 ‘공산무인(公山無人)’이라 했습니다. 산은 비고 사람은 없다는 뜻인데, 산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움직입니다.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이 무너지는 자리, 주관과 객관이 무너지는 자리, 모든 인연이 무너지는 자리가 삼매입니다.

부모님에게서 몸을 받기 전에 여러분의 이름은 무엇이었습니까? 이름을 묻기 전에 이치를 보는 것이 도입니다. 이게 바로 명상을 닦는 것, 삼매를 닦는 것입니다. 삼매를 닦을 때 흐르는 물을 가만히 바라볼 때 아무런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것이 도입니다. 여러분이 꼭 하셔야 할 것이 삼매에 빠져보는 것입니다. 삼매에 들어가서 눈을 뜨게 되면 이치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성철 스님의 말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다 아시죠? 원래 그 말씀 안에는 상구가 있어야 하는데, 첫 번째 구절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두 번째 구절은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다’입니다. 세 번째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입니다. 첫 번째와 세 번째 구가 똑같습니다.

첫 번째 구는 ‘상’의 세계, 관념의 세계입니다. 두 번째 구는 관념이 모두 붕괴된 상태, 나라는 생각이 무너진 상태인 부정입니다. 기존의 질서가 붕괴되고 나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실상 세계가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큰스님이 말씀하신 뜻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말은 기억하면서 실상세계의 도리는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사가 사라지는 그 자리를 우리는 배우고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인연에서 깨어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인연의 세상을 깨달은 분이 석가모니 부처님이고, 부처님이 여러분에게 ‘보아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정견(正見)’입니다.

인간은 인연으로 살고 인연으로 흩어집니다. 인연은 허망하고 덧없고 부질없는 것입니다. 인연의 ‘환’에 속지 말고 인연을 볼 수 있는 지혜를 닦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명상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이냐? 인연 노름만 할 것이냐? 아닙니다. 인연이 생기기 이전의 모습을 우리는 공부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 법문의 주제가 ‘우리 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답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성’을 보는 공부입니다. 나와 네가 없는 공부, 생과 사가 없는, 윤회가 없는, 고통이 없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입니다.

 

 

 

宋 詩人 黃山谷의 詩
萬里靑天(만리청천) 구만리 푸른 하늘
雲起來雨(운기래우) 구름 일고 비 내리네
空山無人(공산무인) 사람 없는 빈 산
水流花開(수류화개) 물 흐르고 꽃이 피네
 

 

 



萬里靑天  
   雲起雨來
   空山無人  
   水流花開

 

   구만리 장천에
   구름일고 비내리어
   사람이 없는 텅빈 산에
   시냇물 흐르고 꽃은 피어라
  
             <황산곡>

 

♥ 선림사 주지 선우스님 인사 말씀

 

 

 

 

 



 

열린 불교문화원 개원을 축하드립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