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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매산 김선원 선생

♧문화재 지킴이 2011. 6. 6. 18:46




심미안으로 보는 고미술의 감정세계


고미술 감정위원. 매산 김선원 선생의 연구실을 찾아서...


충남 청양 출생. 서예가. 한학자

한국서예협회 초대작가

한국고미술협회 감정위원

KBS TV 진품명품 감정위원

한국미술 국제교류협회 이사장

대동서학회


 매산 김 선원. 그는 광산 김 씨다. 유가(儒家)에서 볼 때, 문묘의 배열(성균관에 이름이 오른 사람), 즉 대제학이나 청백리에 오른 가문에서, 같은 집안의 두 사람이 나란히 오른 가문은 광산 김 씨뿐이라는 얘기이니, 그만큼 뼈대가 있는 집안의 광산 김씨 19대 종손인 매산 김 선원 선생은, 조선 성조 때부터 큰아들로만 대를 이어온 특별난 집안의 사람이다. 송나라 때의 주자의 가례는 당시 우리와 맞지 않았지만, 그의 선조 김장생이 가례를 우리에 맞는 관훈상제로 만들었고, 그 아들 김집 또한 그 이론을 확고하게 정립하고 체계화하여 성균관에 이름을 올렸다.


  그가 10년이 넘게 KBS의 진품명품에 감정위원으로 활동하게 된 것은, 충남 청양의 고향에서 어릴 적부터 서예와 한학을 배우며 오래된 비석과 조상의 글씨를 접하게 되었고, 또한 조선 명문가의 글씨를 비교 관찰하며 자란 덕분이기도 하거니와 그러므로 인해 스스로 ‘심미안’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물론 스승으로부터 혹독한 가르침을 받은 결과이기도 하였을 터이다.


 고미술의 감정에 관해 거슬러 올라가보면 중국의 ‘금석 고증학’을, 숙종 때 상형문자를 응용해서 창제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허목선생이 우리나라의 감시(감정)의 효시라고 한다. 이후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선생이 조선의 실학(實學)과 청의 학풍을 융화시켜 경학·금석학·불교학 등 다방면에 걸친 학문 체계를 수립했고, 서예에도 능하여 추사체를 창안했으며, 근대에 이르러 독립 운동가이자 서예가이며 전각가인 오세창 선생이 감시관(감정관)으로서의 역할을 하였고, 대한민국 최초로 조선미술전람회를 창시한, 근대의 서예 대가(大家)인 소전 손재형 선생의 수제자의 제자가 바로 매산 김 선원 선생의 스승이다.


 그는 또한 서예작가로서, 흔히들 작가들이 흔히 열다시피 하는 개인전을 그는 한 번도 열지 않았다. 그것도 지난 2005년도에 회갑을 맞아 주변의 서예가들이 주선하여 큰 장소를 선택하여 의미 있는 회갑 년 개인전을 열려고 했으나, 불행히도 그때 모친이 중환자실에 급히 입원하는 바람에, 자식 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이를 취소하였지만, 인사동에서 화랑을 운영하는 지인이 이를 딱히 여겨, 조촐하게 개인전을 연바가 있다. 그만큼 그는 묵필을 아껴왔다.


 고미술 분야의 제일 어려운 분야인 고서. 전적(문서). 서화의 감정을 맡아 12년 동안 KBS 진품명품의 감정위원으로서 활동한 바 있는 매산 김 선원 선생은 목기, 불상 등 기타 여러 분야까지도 감정을 하며 그 안목의 보폭을 키워왔고, 법무부 산하 법원 도서관에서 초서로 된 옛 판례를 번역하여 문서구입 자문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비문 번역과, 고미술 감정, 또한 경기대학교의 전통예술대학원에 강의를 나가며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그에게는 재미있는 일화가 많다. 전국의 조달청 품목을 감정하던 중, 서울역에서 전지(40호 가량)크기의 그림 두 장을 발견하게 된다. 그 그림은 이승만 박사가 청전 이상범 선생에게 부탁하여 서울역 개청기념으로 선물한 것이다. 당시 감정가가 2억으로 조달청 품목 중 최고가의 금액이었던 것이다.


 감정을 하며 늘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때 가문에서 가보로 여긴 감정품이 가짜로 판명되어, 값싸게 매긴 것을 그 가문에서 흥분하여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였다. 그뿐인가. 방송 때 모 국악가수가 청와대에서 행한 국빈 공연으로 선물 받은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를 가보로 여겨오며 감정을 의뢰하였으나, 단돈 5.000원에 가격을 매긴 아이러니한 일화도 있다. 대통령 글씨의 복사본을 비서실에서 기념으로 선물해 주었던 것이었다. 그 국악가수는 그 사실을 까마득히 모른 체, 집안 가보로 여기며 감정가가 궁금해 직접 가져온 것이었다.

 그가 그동안 감정위원으로 활동하며 가장 값 비싸게 매긴 작품은 어떤 것이었을까. 임금님이 장가들 때의 경호하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경호부대장에게 하사한 병풍 그림 7점 중 지금까지 나타난 3점 중에서, 가장 선명하고 보관이 잘된 작품 하나를 15억의 가격을 매긴 것이다. 이제 매산 김 선원 선생은 KBS의 진품명품의 감정위원의 활동도 후배에게 물려주고, 생각보다 단촐한 종로구 제동의 그가 운영하는 대동서학회(大東書學會)의 연구실에서 하루하루를 소일한다.


 그의 연구실의 탁상 캘린더에는 주말마다 빨간 동그라미로 가득 차 있다. 온통 주례 서는 날로 빼곡히 채워져 있는 것이다. 전남 목포에서 경기도 포천으로 이미 일정이 빡빡하게 잡혀 있다. 그는 주례사에서 준비하여 얘기하는 주요 메시지는 “매사를 정성스럽게 살아라.”라는 것이다.  


 “성자(誠者)는 천지도야(天之道也)오, 성지자(誠之者)는 인지도야(人之道也)니라.”<中庸 中에서> 즉, “정성은 하늘의 도요, 정성스럽게 사는 것은 사람의 도니라.”인데, 공자의 손자가 쓴 중요의 덕목인 중용(中庸)을 젊은 신혼부부들에게 늘 전파 하고 다닌다. 온화하면서도 한학자로서의 기풍을 잃지 않고 옛 한복을 그대로 입고 다니는 그는 요즈음 자택 부근의 평창동 뒷산을 오르내리며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매산 김 선원 선생이 산을 오르내리며 어떤 생각으로, 심오하고 깊은 삶의 화두를 흐르는 세월 속에 묻어두려 하는가.  <김미루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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